아버지 종옥의 가슴에는 피로 물들인 역사와 더불어 생긴 깊은 상처가 여러 개 있다. 그의 하나 밖에 없는 동생 종술이 중학교 시절에 억울하게 어이없이 죽은 것이다. 때는 6.25 전쟁직후 종술은 전교 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영민했다. 어느 날 고등학교 형들과 축구시합을 하던 중, 상대 선수의 무리한 공격으로 무릎에 큰 부상을 당하여 수술을 해야만 했다. 형편이 어려운 걸 안 학교측은 모금을 하여 수술비를 마련한 후, 어머니 이봉운에게 전달한다. 그걸 안 의붓 아버지 박영감이 욕심이 생겨 어머니가 숨겨 놓은 수술비를 찾아 내 가로 챈다. 그동안 단순 절도로만 생각했던 종옥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동생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신문을 돌린다.
“형, 이제 무릎에 감각이 없어. 하지만 괜찮을 거야. 너무 무리하지 마.”
“아니야. 오래 두면 큰 일 난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잖아. 조금만 더 참아. 빨리 돈 벌어서 수술 시켜 줄께.”
“형, 고마워.”
형은 추운 겨울, 찬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패달을 돌린다. 하지만 신문만 돌려 가지고는 그 엄청난 수술비를 마련하기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종술아, 형 돌아 왔다. 배 고프지. 형이 호떡 사왔어. 먹어 봐.”
“형이나 많이 먹어. 나는 엄마가 얼마 전에 밥 차려 주신 거 먹어서 괜찮아.”
종옥은 점점 약해 져 가는 동생을 보며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급해져 왔다. 다음 날 새벽, 종옥은 신문을 돌리기 위해 일어 나는데 너무 고요히 자는 동생 종술이 이상했는지 종술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종술아, 자니?”
“… …”
“종술아!”
“… …”
그 날 종옥은 더이상 신문을 돌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동생의 장례는 초라하게 치뤄졌고 멍해진 형 종옥은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삶에 의욕을 잃은 종옥은 또 다른 일본의 침탈을 막기 위해 평소에 태평양을 지키 겠다고 다짐하며 해군사관학교를 목표로 공부하던 의욕 조차 상실하게 된다.
어머니 이봉운이 일찍 재가 하게 된 것은 남편 박진수가 해방 직후 친일파로 몰려 극단적인 단체에 의해 고문을 받아 요절했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시대에 두 아들을 홀몸으로 키운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고 얼마 전 소개로 알게 된 박영감이란 사람이 어머니 이봉운에게 흥정을 해 온 것이다.
“봉운씨, 나에게 시집와서 집안 일과 농사일을 도와 주면 내가 당신 두 아들 공부는 내가 다 책임짐세.”
그 말에 넘어간 이봉운은 마음에도 없는 재혼을 덥석 하게 되고 일제 때 재산을 모은 박영감의 아내라고는 하지만 거의 종살이나 다름이 없었다.
“여보, 당신은 여자라고 하지만 왠만한 남자보다 일을 갑절은 하는구려.”
“… …”
“내한테 아들 하나 낳아주고 재산을 두 배로 늘려주면 종옥이 종술이는 내가 책임지지.”
하지만 이미 박영감은 몰래 종술이 수술비를 가로 챘듯 전혀 종옥이와 종술이에게 십원 한 장 쓸 마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 이봉운은 두 아들의 교육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집안 살림이며 농사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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