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4 Soul

 

이제 내 나이 40대 후반에 접어 들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기 좋아하는 나이는 적어도 60은 되어야 한다. 나이에 민감하다는 것은 아직 젊다는 것이다. 그런데 40대, 그것도 40대 후반이라는 현실에 아직 미혼인 나로선 이제 결혼같은 건 내려 놓아야 한다는 체념 섞인 말이 나온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은 옷수선이다. 혼자 가게에서 모든 일을 해 낼 수 있다면 나의 미래가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어려운 드레스와 양복을 하시기에 우리 가게가 이 지역에서 알아주는 옷수선 가게가 되었다. 이렇게 어머니 없이는 이 가게가 제대로 돌아 갈 수가 없다.

 

최근 일주일 넘게 이 마음이 지옥을 경험한 이유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아직 짝을 만나지 못하고 일흔이 훌쩍 넘으신 어머니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나의 처지에 어떤 위기의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결혼 할 수 있는 확률은 줄어들고 그럼 여자친구라도 사귈까 해도 미국의 각자 격리된 문화적 환경상 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런저런 이유로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 제 때에 풀지 못하자 나는 가게 손님에게 대하는 태도가 아주 좋지 못했고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손님들이 내 눈치를 보았다고 하신다. 그런데 이런 내 자신이 결혼하면 잘 살까? 글쎄올시다. 신앙인으로서 믿음은 내 던져졌고 마음은 강퍅해 졌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짝을 주시지 못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은 나이가 많아서 하는 게 아니라 성숙했을 때 하는 것이리라. 사랑도 성숙해야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정욕에 의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그저 동물의 짝짓기와 다름이 없다. 고린도 전서 13장의 사랑에 관한 구절로 이 글을 맺는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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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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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움직이지마!



 

우리 옷수선 가게에는 유난히 경찰이 많이 온다. 이곳 경찰 국장도 우리 가게 단골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경찰 손님이 여러 개의 유니폼 셔츠 품을 몸에 딱 맞게 줄이려고 왔다. 평소 운전하다가 길가에 경찰이 보이면 브레이크를 잡으며 마음이 쫄리는데 가게에서 보는 경찰 손님은 왠지 전혀 무섭지가 않다.

 

방탄조끼를 입은 그 경찰은 셔츠를 하나하나 입으며 나는 핀으로 바디라인을 살려 찝는다. 그러는 와중에 움직이지 말라고도 하고 똑바로 서 있으라고도 하고 뒤로 돌아 서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말은 대개 경찰이 범인에게 하는 말인데 재봉사인 나는 경찰에게 큰소리를 내고 있다.

 

그럴 때 마다 경찰들은 나에게 꼼짝 못한다. 핀을 몸에 가까이 대면 스스로 팔을 들어 올리고 내가 하는 말에 그대로 복종을 한다. 경찰 국장, 미키는 연세가 거의 예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데 입 속에 씹는 담배를 질겅질겅 물고 오곤 했다. 그리고 도둑 잡는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도둑이 미키 국장을 잡을 거 같이 몸이 둔해 보인다.

 

경찰들도 유니폼을 몸에 딱 달라붙게 입어야 일 할 때 폼 나게 할 수 있나 보다. 옷이 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시 할 수 없다. “옷이 날개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재봉사인 나는 오히려 일 할 때 입는 옷이 항상 그 옷이다. 까만 양복바지에 주로 회색 빛 셔츠.

 

경찰에게 큰 소리 치는 직업은 아마 옷수선 말고 또 있을까? 미국 경찰은 권위있고 무섭기로 유명한데 그 권위를 나타내는 옷을 재단해 주어선가? 경찰은 옷수선집에 오면 순한 양이 된다.

똑 바로 서서 움직이지 마세요!”

옛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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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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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短點)에 대한 고찰

 


단점이란 낱말은 흔히들 나쁜 습관 같은 의미로 알고 있다. “단점에서 짧다라는 뜻이다. 짧은 건 오래 가지 못한다. 멀리 가지 못한다. 하지만 단점이 혼자 있지 않고 적절한 곳에 심겨지면 오래 가고 멀리 가는 장점이 된다.

 

잘 알려진 대로 내향적이라는 성격은 요즘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재인식 되어지고 있다. 그것은 내향적인 성격이 잘 어울리는 환경과 상황을 만날 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말을 심하게 더듬는 한 총각이 몇 년 간 웃지 않고 우울해 하는 처녀를 만났을 때 어쩌면 그 처녀는 웃음을 터뜨릴 지 모른다.

 

거의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굳이 장점과 단점으로 양분해서 38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 장점이 단점이 될 수 있고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특징이 어떠한 상황에 놓이는가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

 

깐깐한 성격을 소유한 손님 덕분에 일을 더 확실히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너그러운 손님 때문에 나의 기술이 느슨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점과 단점은 소립자와 같이 입자가 될 수도 있고 파동이 될 수도 있는 유동적이고 중립적인 특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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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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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누나 고마워!



 

어제였던가? 저녁식사 중 일곱 살 배기 조카, 제시카가 삼촌인 나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했다. 그 어린 나이에 할 만한 질문이 아니기에 말이 될 만한 문장으로 만들기가 그 나이엔 어려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대충 들리는 단어가 몇 개 있었다. 싱글, 애기, 힘들어서 등등의 낱말이 뒤죽박죽 섞인 문장의 질문을 한 것이다. 이 세 개의 단어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제시카의 질문은 무엇일까? 약 한 달 전, 함께 사는 동생이 늦둥이 아들을 보았다. 위로 누나도 두 딸, 아래로 남동생도 두 딸만 있었다가 동생이 아들을 낳으니 우리 집안으로서는 경사였다.

 

원래 예정 날은 323일인데 228, 가게에서 어머니와 미싱을 돌리는 오후, 급하게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수씨가 진통이 시작되고 양수가 터졌다는 것이다. 이웃에 한나 엄마도 전화를 받고 급하게 뛰어와서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급하게 일을 중단하고 차로7분 거리인 집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2층 화장실에서 제수씨가 낑낑대고 한나 엄마가 부축을 하고 있다. 겨우 계단을 내려와 차에 올랐고 집 근처 병원으로 가는데 비상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달렸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4남매를 키우는 한나 엄마는 노련하게 제수씨의 호흡을 코치했고 마침내 무사히 도착했다.

 

이윽고 동생도 병원에 당도했고 1분도 채 못되어 아기 울음소리가 났다. 그때까지도 아기 이름을 아직 확정하지 않아서 대충 John이란 이름을 염두 해 두다가 John 이란 이름은 큰조카 Jane의 남성이름이라고 하여 급하게 제수씨가 Daniel로 바꾸어 병원 측에 제출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안에 다니엘이라는 아들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거의 한 달을 일찍 나와서 폐 속에 양수를 다 토해 낼 때까지 약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고 드디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 때부터 동생 부부는 고생의 시작이다. 아니 즐거운 고생? 옆에서 지켜보는 제시카가 너무 흥분하여 거실 마룻바닥에서 데굴데굴 뒹군다.

 

이제 다니엘이 태어난 지 한달이 좀 넘었다. 한 두시간 마다 배고프다고 울어 대는 다니엘. 수시로 갈아주는 똥 기저귀. 청결을 위해 개운하게 목욕도 시켜주고 코딱지도 파 주고. 엄마 아빠의 그런 모든 정성을 지켜 본 제시카가 저녁 식탁에서 삼촌인 나에게 알아듣기 힘든 질문을 한 것이다.

 

삼촌, 싱글, 애기, 힘들어서….

 

이 네 단어로 제시카의 질문을 해석해 보니 삼촌이 아직 싱글인 것은 애기 키우기 힘들어서야?” 그 질문을 듣고 나는 놀라 뒤로 넘어졌다. “꼭 틀린 말은 아니다.” 라고 대답해 주었다. 제시카도 동생을 옆에서 지켜보며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한 편 이것 저것 할 일도 많고 신경 쓸 일도 많다는 걸 아는 것이다.

 

어쨌든 다니엘이 무사히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은 이웃의 도움과 가족의 손길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웃 한나엄마의 큰 딸 한나는 이제 겨우 10살인데 제수씨로부터 급하게 전화를 받은 한나 엄마가 차가 없어 어찌할지 망설이고 있자 서슴없이 엄마, 지금 당장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그래서 한나 엄마는 100미터 달리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생명의 은인은 한나이다. “한나 누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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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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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사리(가명)


카톡에 네가 "안녕!" 했길래 
드는 생각이, 잘 지내나 걱정되는구나. 
너 집으로 돌아간 후 1, 2주 동안은 영적으로 힘들었고
그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았고
얼마 있지 않아 곧 영적으로 회복 되어서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 다음주 교회에 갔다.

사실 네가 오기 얼마 전부터 내 심령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고 가게에서 엄마와도 좀 좋지 않았어.

마음이 강퍅하다는 말을 했었는데
다른 말로는 마음이 돌같이 굳었다 라고도 하고
그런 상태가 되면 매사에 부정적이 되고 
상처도 잘 받고 상처도 잘 주고
완고해 지고 얼굴 표정도 굳어지지.

그런 상태를 영적으로 병들었다고도 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잘 웃고 말투도 부드럽지.
어린아이가 대표적이지.

교회 한 주 빠졌다고 여기저기서 걱정하는 연락이 오더라.
이웃에 사는 미국교회 전도사님(한인 여자분)이 우리 가게 찾아와서는
내 상태를 듣고 기도까지 해 주고...

이상하게도 주위에서 기도해 주고 권면(위로와 권유)을 해 주어선지 돌 같던 내 마음이 빠른 속도로 풀어지더라.

오늘 일 하면서 유튜브를 들었는데 기억나는 내용이 있어서 공유한다. 단희쌤이라는 유튜버인데 글쓰기 수업(최옥정 작가)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인간이 행복하려면 크게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개인의 자유, 또 하나는 남들과의 연대.

개인의 자유는 3가지 인데, 돈의 자유, 시간의 자유 그리고 영혼의 자유라고 해. 돈이 충분히 있어야 하고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하고 마지막 영혼의 자유는 스트래스와 허무함 같은 것으로 부터의 자유. 자유라기 보다는 잘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겠지?

그 마지막 영혼의 자유에 있어서 네가 올 즈음 나는 내 영혼이 평안하지 못했고 자유하지 못했던거 같다. 왠지 너와 대화할 때면 내가 몸 담고 있는 교회의 단점만 말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너의 조언대로 교회를 쉴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강퍅했던 내 마음이 금새 풀어지면서 그냥 교회에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 되었다.

행복의 두번째 조건인 남들과의 연대에 있어서 교회에 가는것은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데 이민사회에서는 좋은 도구가 되는거 같다. 교회는 남과의 연대 뿐만 아니라 영혼의 자유도 해결 할 수 있는 곳인것 같다.

다만 나 같은 경우 어떤 이유에선지 마음이 돌같이 굳으면 그러한 교회가 싫어지고 교회 가기 싫어지게 되지. 많은 사람 있는 곳도 가기 싫지.

그렇게 마음이 안 좋아지면 가게에 찾아 오는 손님도 반갑지 않고 괴롭기 까지 하지.

마음이 돌같이 되는 이유는 내 마음에 성령이 소멸되었기 때문인데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성령충만을 강조하지.

우리 교회에서는 사순절을 기해서 벌써 13차 성령충만 기간을 갖고 있어. 그동안 나는 그 과정을 한번도 제대로 따라간 적이 없어.

결국 교회는 사람들의 마음이 성령충만하여 그 삶에 기쁨이 일고 범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성경에도 나와.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 범사가 잘되고..."

그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는 성령충만 해야 하고
성령충만 하기 위해서는 기도, 말씀, 찬양 이 골고루 삼박자를 이루고 그 세가지는 교회를 통해 다른 사람과 연대하여 
서로 힘이 되어 주는 것인데

이번에도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강퍅하게 되자 교회에,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권면해 오고 기도해 주니까
다시 교회에 발걸음을 옮기고 마음도 풀어지고 요즘은 가게에서 일하는데 문제가 없다. 다른 말로는 마음에 힘든게 없다.

교회를 쉬어 보라는 너의 조언도 일리가 있고 맞는 말이지만
결국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된다. 그만큼 나라는 존재는 교회를 떠나면 안되는 체질이 된거지.

시험삼아서 교회를 몇 개월 쉬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긴 들어. 하지만 저번 주일에 교회 갔다오니까 영혼의 자유가 주어지더라.

그러니까 결국은 마음의 문제야. 마음은 두 가지 영이 지배하게 되어 있는데 성령과 악령.

지킬과 하이드씨와 같이 
인간은 그 양면성을 가지고 살아 가는거 같아.

교회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성령의 지배함을 받도록 하는 것이지.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구나.

네가 궁금해 하는거 같아서 자세하게 적어 보낸다.
그럼 주말 잘 보내고 
다음에 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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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요리에 고추장을 바르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5 ? 지금으로부터 15 , 우리 옷수선 가게 바로 도랑에 아버지께서 누군가로부터 얻은 미나리 뿌리 포기를 던진 이후, 2019년인 지금 도랑은 미나리 천지다. 미나리는 몸에 해독작용도 하는 아주 유용한 약초이다. 며칠 전에도 이웃 백씨 아주머니께서 미나리를 끊으러 우리 가게에 오셨다. 바로 며칠 전엔 가게 지중해 식당 주방장이 우리 엄마가 도랑에서 미나리 끊는 봤는지 우리 가게에 찾아 와서는 먹는거였냐며 어떻게 먹냐며 물어왔다.

 

그리고 나서 며칠 도랑에 나가보니 미나리 밭이 아주 대머리처럼 민들민들 해졌다. 끊어간 것이다. 지중해 식당은 향이 나는 약초를 사용한다. 식당은 규모는 작지만 하기로 유명한 식당이다. 그러나 언젠가 포라벨라 센드위치를 주문해 먹었는데 올리브유를 너무 많이 발라 놓아서 느끼했다. 그래서 고추장을 발라 먹었는데 뭔가 개운한 맛이 났다.

 

나는 오지랖도 넓다. 즉시 고추장을 손에 들고 식당에 찾아가서 맛을 보여 주었다. 올리브유와 향신료를 주로 다루는 지중해 식당에 고추장이 왠말인가. 그래도 식당 종업원들 중에 몇몇은 올리브유에 식상했는지 화끈한 고추장의 매운맛에 엄지를 들어 올린다. 고추장이 식당에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미나리가 지중해 식당에 쓰일 모양이다.

 

조만간 식당에 찾아가서 미나리로 만든 요리 주문해 먹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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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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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


지네 처녀와 지렁이


옛날에 아내와 여섯 자식을 둔 한 사람이 찢어지게 가난했어. 너무 오랫동안 아내와 자식들을 굶기자 더이상 못 보겠다는 거지. 어느날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삶에 의욕을 잃고 끝장을 내고 싶어 하는 거야. 혼자 산에 노끈을 가지고 올라가서 나무에 올라가 목을 매려던 순간 저기 아래에서 곱게 차려 입은 처녀가 떡시루를 머리에 이고 올라오네. 

그 나무 바로 아래에서 그 처녀는 시루를 내려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서 중얼거리더니 위를 쳐다 보지도 않고 내려 오라는 거야. "아저씨, 왜 죽을려고 하세요. 죽을 힘으로 사세요." 그 처녀는 그 사람에게 떡을 먹고 기운 내라고 하고는 돈도 두둑히 주었지. 그러면서 그 처녀가 한가지 당부를 하는 거야. "아저씨, 내려 가다가 상제를 만나거든 피하세요." 

그 말만 하곤 사라지네. 내려 가는데 어찌하나. 그 상제를 만났네. 근데 그 상제가 그러는 거야. "당신, 저 산 위에서 어떤 처녀를 만났지? 그 처녀는 사람이 아니라 천년묵은 지네야. 그 지네 말 들었다간 당신 죽어. 저 집이 그 지네가 사는데 못 믿겠으면 가서 확인해 봐. 앞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뒷담을 넘어 뒷문에 구멍을 뚫어서 봐. 그리고 '앗 지네다!'하고 소리 지르면 당신이 살고 그 지네는 죽지. 아무 말 하지 않으면 그 지네는 살고 당신이 죽어."

그 사람은 그냥 집으로 가서 허기진 가족들을 먹이고 그 돈으로 살만하게 됐지. 그런데 그 상제가 한 말이 자꾸 걸리거든. 정말 그 처녀가 지네인가 확인하러 그 산속에 집으로 갔어. 몰래 방문에 구멍을 뚫어 보니 왠걸 진짜 팔뚝만한 지네가 기어가네. 그 상제 말대로 소리를 지르자니 아무리 미물이지만 은혜를 베푼 지네가 죽겠고 가만히 있자니 내가 죽겠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은혜를 베푼 지네를 죽일 순 없지 하곤 어차피 죽었을 목숨 차라리 내가 죽자. 하곤 그냥 내려오네. 

한참을 걸어도 괜찮아. 그래서 다시 지네가 사는 집에 찾아 가서 문을 두드렸더니 곱게 입은 그 처녀가 나오네. 자초지종을 얘기 했더니 처녀가 말하길 원래 자기는 하늘에 선녀인데 죄를 짓고 세상에 내려와 기한 내에 100명의 목숨을 살리면 죄를 씻고 하늘로 살아서 돌아가고 살리지 못하면 영영 죽고 만다는 거야. 반면 그 상제도 하늘에 사자인데 죄를 짓고 이 땅에 내려와 기한 내에 100명의 목숨을 빼앗으면 살아서 하늘로 돌아가고 그렇지 못하면 이 땅에서 끝장이 난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지네를 보고 아무 말 하지 않아서 선녀도 살고 아저씨도 산거지. 잠시후 회오리가 불더니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홀연히 그 처녀가 하늘로 사라지네. 그리고 그 상제는 지렁이가 되어 흙 속으로 파 묻히고. 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하여 하늘을 바라 본 후 아내와 여섯 자식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 갔어.

* 상제: 부모가 죽어서 상복을 입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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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메주 도사" 서정오 글 / 이형진 그림 : 읽고 요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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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뽀개다

Essay2019.03.01 04:33

독서를 뽀개다

 

 

책은 언어의 묶음이다. 간혹 사진과 그림도 끼어 있다. 우리는 그 책이란 것을 읽어야만 한다고 많이 읽어야 한다고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 책을 많은 시간을 들여 읽어야만 하는 것인가?

 

독서라는 행위는 요즘같이 여러 매체가 발달된 시대에는 여러 지식습득 중 하나일 뿐이다. 예전 같으면 거의 모든 지식습득의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 졌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고 여러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는 이 시대에 책 만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책을 한 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한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글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가 가만히 앉아 책을 읽게 만들어 주지 않는 데다가 독서를 반강제로 권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압박이 있기에 조금이나마 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이 글의 첫 머리에 책은 언어의 묶음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책만 언어의 묶음일까? 친구끼리 만나서 나누는 대화와 연인과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블로그의 글을 읽는 것도 어떤 언어의 묶음을 접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주눅드는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독서라는 행위가 책에만 국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서라는 것을 다양한 정보를 얻는 다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삶의 여러 체험이 독서가 될 수가 있다. 매일 겪는 일상과 가끔 떠나는 여행과 교회나 절에서 듣는 설교와 법문도 일종의 독서가 될 수가 있다. 오히려 책은 한 번 읽고 시간이 지나면 거의 잊는다. 물론 다 읽고 난 후의 뿌듯함은 누구나 체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뿌듯함이 책에만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본 후 밀려오는 감동과 여운도 독서 효과이고 친구와의 대화도 독서효과이다. 더 나아가 혼자서 멍 때리며 생각에 잠기는 것도 독서이다.

 

이 모든 언어를 기반으로 한 모든 체험은 독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다른 것은 별로 하지 않고 그저 책만 읽어대는 사람보다는 여러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사람이 더 바람직한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닐까.

 

여태까지 독서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읽으라고 압박을 가하는 무게가 컸다. 이제 그 무게를 좀 덜어 냈으면 좋겠다. 책을 조금 읽더라도 대신 우리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미 독서를 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독서의 행위에 더해서 글을 쓰는 사람과 독서만을 하는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독서는 수동적인 것이고 글쓰기는 자기가 직접 창조의 자리에 서서 매체를 생산해 내는 능동적인 삶이다.

 

그러므로 독서를 많이 했느냐 따질 것이 아니라 글을 얼마나 기록하는 지로 그 사람의 독서량을 판가름 해야 할 것이다. 읽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 지나 쓰는 것은 이 존재가 온 몸을 흔들어 집중하여 이 가슴팍에 뚜렷이 새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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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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