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미국 옷수선 이야기(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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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옷수선 이야기 -- 실수를 하다
실수를 하다 비교적 꼼꼼한 나는 웬만해선 실수를 하지 않는다. 실수는 같이 일 하시는 엄마의 단골메뉴이다. 그 날 따라 무슨 바람이 나서 나는 다른 방법으로 손님 바지 햄을 해 보았다. 긴 레깅스 여자 바지를 반바지로 만드는 것인데 그만 접는 선에 무심코 가위를 댄 것이다. 이미 싹둑 자르자 마자 나는 화들짝 놀라 점프를 했다. 후덕(작업대) 건너편 엄마도 덩달아 놀라신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어찌 할지 궁리를 한다. 우선 반바지이니 좀 더 짧아져도 어쨌든 반바지이다. 좀 더 야한 핫팬츠가 되지만서도. 어쨌든 최대한으로 기장을 확보하자. 그래서 두 번 접을 것을 한 번 접어 오바로끄로 처리했다. 실수를 한 바지라 그런지 연속으로 일이 잘 되지 않았다. 미싱으로 박는데 곧게 박아지지 않고 삐뚤게 박아졌다. ..
2019.10.18 -
미국 옷수선 이야기 - 껌 볼 머신의 추억
껌 볼 머신의 추억 2001년, 내쉬빌 북쪽 10마일 지점인 헨더슨빌에 처음 옷수선집을 개척하기 전, 그 자리는 미용실이었다. 그 미용실에 있던 껌 볼 머신 자판기를 우리 가게에도 계속 두었다. 1센트 페니만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각양각색의 동그란 껌볼 중 하나가 떼구르르 굴러 내려왔다. 18년이 지난 2019년 바로 어제 아주 오랜만에 어떤 여자손님이 두 자녀를 데리고 우리 옷수선집에 찾아왔다. 그 두 자녀 중 큰 아들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 내가 미싱을 돌리는 자리 바로 옆을 가리키며 자기가 3살 때 엄마따라 이곳에 왔을 때 미스터박이 내게 패니를 주어 껌볼 하나를 빼 먹었다는 것이다. 현재 스무살이고 아직 그때가 생생한지 구체적으로 얘기를 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 껌 볼 머신은 사라지고 대신 ..
2019.10.07 -
착각과 고지식
착각과 고지식 늦은 오후, 여자아이 둘과 할머니 그리고 아빠로 보이는 중년남자가 우리 옷수선 가게에 들어온다. 언니뻘 되는 여자아이가 탈의실로 들어가 드레스를 입어 보고 어머니는 핀으로 품을 찝고 나는 청바지 허리 줄이는 작업을 마저 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아빠로 보이는 사내가 갑자기 문을 확 열고 나가더니 차를 타고 가버리는 것이다. 그 즉시 아차, 그 남자 이 손님들과 가족이 아니라 또 다른 손님이구나. 그래도 그렇지 내가 아무 말 없이 일하고 있다고 본인도 가만히 서 있으면 어떻게 하나? 나는 어머니와 궁시렁 궁시렁 별난 손님 다 본다. 이러면서 일을 계속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손님이 다시 들어온다. 이미 그 아이손님은 갔고 이 남자가 하는 말이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서 갔다 왔다고 한다..
2019.06.22 -
약혼녀 맘대로
미국 옷수선집 이야기 약혼녀 맘대로 약간 기분이 들 떠 보이는 멀대 같은 젊은 남자가 우리 옷수선 가게에 들어온다. 얼마 전에 다리 통이며 허리 그리고 기장을 수선한 양복바지를 찾으러 온 것이다. 탈의실에서 입고 거울을 보며 잘 맞는지 확인한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지 좋아한다. 계산을 하고 나가다가 이런 말을 던진다. “내 약혼자한테 마음에 드는지 보여 줄겁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오해 했는지 몰라도 마치 약혼녀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다시 가져 오겠다는 말로 들리니 기분이 좀 상했다. 자기 옷 자기가 마음에 들었으면 그것으로 끝내는 것이 보통인데 가끔 자기 아내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좌지우지 되는 미국남자 손님이 좀 있다. 그럴 때마다 미국은 여자들의 파워가 더 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
2019.03.08 -
구두쇠 손님의 절약은 과연 진정한 절약인가?
구두쇠 손님의 절약은 과연 진정한 절약인가? 꼬장꼬장하게 생긴 어떤 수염 난 할아버지 손님이 바지 두 개를 들고 우리 가게에 들어온다. 허리를 2인치씩 줄여 달라고 한다. 바지에 붙어 있는 42인치라고 적혀 있는 꼬리표를 들춰 보여주며 40인치로 해 달라는 것이다. 옷수선집 오랜 경험상 꼬리표의 치수가 항상 정확한 건 아님을 알기에 나는 그 할아버지의 허리에 줄자를 뺑 둘러 재어 보았다. 그랬더니 38인치가 나온다. 그래서 결국 탈의실에서 입어 보게 하였다. 핀으로 허리 뒷쪽을 찝고 그 바지를 재어 보니 38인치이다. 그 할아버지는 깎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인상을 하며 가격을 깎기 시작한다. 바지 하나당 허리 줄이는데 15불을 받는데 10불에 해 달라고 우긴다. 바지 단 줄이는 것이 12불인데 말도 ..
2019.02.28 -
손님에게 들킬뻔
손님에게 들킬뻔 한 일주일 전, 어떤 나이 지긋한 백인손님이 조끼, 셔츠, 양복자켓 등을 여러 개 가져왔다. 5년 전 맞춤으로 해 입은 옷인데 살이 빠져서 입지 못하다가 아까운 마음에 돈을 들여 고치기로 마음 먹고 우리 옷수선 가게를 찾은 것이다. 어머니는 조끼와 자켓을 주로 하고 나는 셔츠와 바지를 주로 하는데 요즘 어머니가 몸도 예전 같지 않으시고 일감도 많이 채워져 있어서 비교적 까다롭고 힘든 조끼 네 개를 다른 옷수선집에 보냈다. 갯수가 많아서 우선 다섯 개의 셔츠와 자켓을 먼저 하고 그 힘든 조끼 네 개는 나중에 끝내 주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먼저 해 주기로 했던 옷을 찾으러 그 손님이 왔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이 손님의 옷 일부를 다른 곳에 보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
2019.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