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한 문학/자유시 :: Free Poem(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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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시] 음식에 대한 사유 - 먹고 먹힘에 대해
음식에 대한 사유 NaCl 오늘 아침은 어제 저녁 먹다 남은 지중해 음식 치킨 온더 싸쥐(Chicken on the Sajj)를 전자렌지에 데워 먹었다 그 닭고기의 살점을 입에 문다 엄연히 이 세상에서 숨쉬던 생명체였다 그러나 이젠 내 몸의 일부로 흡수된다 이 세상은 먹고 먹히는 법칙으로 유지된다 먹는 주체는 즐겁지만 먹히는 객체는 죽을 맛이다 하지만 주검은 또 다른 생명의 일부가 된다 이 세상에 먹히지 않을 생명은 없다 썩음은 미생물에게 먹히는 것 지금 나는 숨을 쉬며 미생물을 먹었다 삶과 죽음은 서로 상반되나 결국 하나다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을 낳고 계속해서 뭔 가에 먹히는 주검이 된다 어쩌면 모든 생명은 먹히기 위해 태어났을 수도 있다 뭔가 먹어야 하는 생명은 그 수많은 주검을 음식으로 소화하여 나..
2024.02.09 -
[e시] 51세 즈음에 - 독거노총각님께 드리는 시
51세 즈음에 나 이제 나이 좀 먹었네 옛날 같으면 손주 볼 나이 재작년 혼인신고 하자마자 순식간에 얻은 장성한 두 아들 공교롭게도 성씨마저 같다 나 이제 나이 먹을 만큼 먹었네 옛날 같으면 인생 정리할 나이 이 시대에 태어난 건 행운일까 므두셀라(מְתוּשֶׁלַח) 영감님 때가 훨 나았나? 고이 죽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오케이(Okay) 세상은 한바탕 가을 운동회 차전놀이 흙먼지 뒤집어 쓰고 집에 돌아와 씻고 잠들면 꿀잠 죽음이 그 꿀잠과 같다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을텐데… 아니, 이 삶이 어쩌면 저 세상에서의 달콤한 꿈? 가끔 악몽도.... 하지만 옛날 뒷간에서 떨어지는 대변소리는 너무도 리얼(Real)했다 철푸덕! 2024. 1. 8 사진 출처: pixabay.com
2024.01.09 -
[e시] 윤석열대통령께 드리는 시 - 춘천 반공회관
춘천 반공회관 80년대, 국민학교 시절, 줄을 맞추어 반 별로 찾아간 반공회관 소양로 이디오피아 참전 기념비를 지나 공지천 다리를 건너 넓게 펼쳐진 소양강을 내려다 보는 언덕 위 반공회관 가는 길 심심찮게 침투하는 무장공비 회관 앞마당에 펼쳐놓은 무기들 이승복 어린이의 찢어진 입가에 혈흔이 우리의 가슴에 묻었다 반공으로 정신무장하고 바로 옆 달려간 아름다운 갈색 건물 어린이 회관 신나게 뛰어놀며 마징가 제트를 관람하고 소양강변 내리막길을 걸어 학교로 거리에 시민들은 긴장을 숨기고 평화롭게 두부를 산다 사과를 고른다 2024. 1. 5
2024.01.06 -
[e시] 떡만두국 - 2024년 새해 첫 날 하루종일 배가 부르다
떡만두국 새해 첫날 아침 신년예배 후 친교실에서 배급받은 떡국 4인분 2개를 동생 식구 다섯과 엄니, 나 총 일곱 식구가 직접 빚은 만두와 곁들여 떡만두국을 끓여 먹으며 한 살 더 먹었다 조상님들이 떡국을 언제부터 드셨는지 모르나 나이를 먹는다는건 떡국을 먹고 새해를 건강하게 시작하고자 하는 바람 게다가 만두를 넣었으니 그 맛은 배가 된다 최근 속회모임에 각자 가져올 음식을 카톡에 남기는데 어떤 분은 쟁반 막국수 어떤 분은 파스타 어떤 분은 갈비 나는 배를 가져간다고 하니 인도자님 부인이 음식이 들어가는 날씬 배냐고 농담을 건네신다 모임에 가져가 깎아 먹으니 다들 달고 맛있다고 한다 내 입엔 밍밍한데 배려의 립서비스일까 진짜 달아서일까 오늘은 하루종일 배가 부르다 2024. 1. 1
2024.01.02 -
[e시] 거미의 패시브 인컴
거미의 패시브 인컴 실과 바늘로 벌어 먹는 옷수선집 구석데기에 지 몸에서 뽑아낸 실로 집을 엮고 그 안에서 먹이를 기다리며 명상에 잠긴 팔자 한가한 놈이 있다 손님을 또한 기다리는 가게주인은 미싱에 실을 꿰고 드르륵 옷을 고치지만 이놈은 때때로 끊어진 집을 수선할 뿐 그 놈이나 주인이나 먹고 살기위해 실을 뽑고 실을 꿴다 가만히 그놈을 물끄러미 바라 본 주인은 그 놈이 자기보다 낫다는 생각 하나 하루종일 실로 옷을 고쳐야만 하는 주인의 패시브 인컴에 대한 꿈을 이 놈은 태생적으로 획득했으니 주인의 실은 돈 주고 구입하나 이 놈의 실은 평생 공짜 2023. 9. 10
2023.09.11 -
[e시] 얼어 죽을 시인 - 시인은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가?
얼어죽을 시인 어쩌다 장기자랑에 시낭송을 하였네 나는 그런 사람 아니네 어찌됐는지 그럭저럭 했네 다들 잘해서 똑같이 백 불씩 받았네 어느 분 말씀에, 당신이 일등이라며 추켜 세우니 낯이 뜨겁네 한동안 복도 지나기 엉거주춤 친교실에 들어서니 어느 분이, 시인님 오셨네 어이쿠, 얼어 죽을 시인 나는 얼음이 되었네 2023. 7. 3
2023.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