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과 손님

2018. 10. 28. 13:30짭짤한 문학/수필 ::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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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손님

 

 

토요일, 어쩌면 손님이 가장 붐비는 요일. 중간선거 투표하러 갔다 온 1시간 동안 어머니와 동생이 투표장 처럼 몰리는 가게 손님 때문에 한창 볶아쳤다 한다. 점심이 다가오는 경적소리. 그건 다름아닌 압력밥솥 증기 배출소리. 탈의실에 이미 손님이 옷을 갈아 입고 있는 탓에 나중에 온 손님은 어쩔 수 없이 밥솥이 한창 난리를 치고 있는 방으로 안내를 했다. 

 

좁은 옷수선가게에 탈의실을 두 개나 만들 수도 없고 밥 먹고 쉬는 작은 방을 임시 탈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하필 밥솥이 칙칙 소리를 내는 그 때에 그 젊은 여자 손님은 그 방에서 옷을 갈아 입은 것이다. 다 입고 나오는 그 여자손님은 말은 않지만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웃음과 황당함이 적절히 배합된 그 묘한 표정은 그 한국산 압력밥솥의 친절한 인공지능의 "밥을 저어 주세요!" 라는 안내에 약간 혼이 빠진 듯하다. 

 

 

 

미국에서 밥 먹고 산지 2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매일 밥과 국과 김치다. 가게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촛불을 켜 놓고 스프레이를 뿌린다. 예전에 비해 한국음식 냄새에 거부감을 표하는 손님이 거의 없다. 오히려 한국음식점 소개를 부탁하는 손님이 더러 있다. 어떤 손님은 아예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고개를 숙이며 "안녕히 계세요!" 하며 나가는 손님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듯 하나 귀엽기 까지 하다. 

 

손님에게 친절해야 하는데 이 마음이란 것이 일정하지 않아서 바이오리듬을 타며 어쩔때는 손님이 귀찮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손님과 짦게나마 즐거운 대화를 하기도 한다. 예전에 비해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때에 되도록이면 친절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손님을 대하는 모든 업무가 로봇으로 대체될지도 모르는데 항상 친절한 로봇이 변덕스런 인간보다 진정 나을까 싶다. 

 

가게 임시 탈의실에 압력솥 인공지능이 머지않아 손님을 받기까지 한다면 나의 감정노동은 끝이다. 과연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 되는 것인가? 현재 내 삶의 의식상태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70% 라면 여가시간은 10%정도다. 이제 앞으로 그 반대가 된다면 나는 그 여가를 얼마나 재밌게 보낼까. 어쩌면 그 여가가 곧 돈으로 연결되는 생산적인 취미활동이 되지 않을까? 아니, 앞으로는 일과 취미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취미가 곧 일이 되고 일이 취미가 되는 그런 재밌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제발 그런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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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27 [11:17 PM]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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