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그 행운의 액땜

2018. 10. 23. 20:49짭짤한 문학/수필 ::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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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그 행운의 액땜

NaCl


누나와 두 조카 딸, 동생 내외와 두 조카 딸,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매형을 제외한 아홉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삼겹살을 조용히 구워 먹는 수요일 저녁, 별안간 내 옆에 앉아 오물오물 먹던 동생의 막내 딸 네 살 짜리 제시카의 입에서 쿵하고 소리가 났다. 그 작은 손이 입을 막고 있다. 몸을 앞 뒤로 흔들며 먹다가 얼굴 높이의 상에 입을 찧은 것이다.

몸을 웅크리고 입을 막고 있을 뿐 신음소리조차 없다. 동생이 말하길, 제시카는 너무 아프면 아플수록 울지 않는다고 한다. 놀란것도 있지만 부끄러워서 그런단다. 이 상황에서 제시카의 할머니, 즉 나의 어머니가 처녀시절 추억담을 꺼내신다. 

초등학생 때였을까? 교회학교 아동부 찬양대 연습을 하러 가는 언니들을 따라 교회에 갔다. 불행이도 교회에서 넘어져 입을 다쳤다. 부끄러워 입을 막은채 찬양연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입을 막고 있는 동생이 이상하여 한 언니가 왜 입을 계속 막고 있냐고 묻는다. 그제서야 입에서 손을 떼는데 입 주위가 피 범벅이다. 

 



스무살이 채 안 되어 어머니는 미용사가 되어 이십대에 해당화 미용실을 개업했다. 그 동네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좀 모자란 청년이 있는데 한 역술인 할아버지가 그 청년을 불쌍히 여겨 한 3년 간 산에서 역술을 가르쳐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게 하였다. 그 이후로 간간히 해당화 미용실에 출근을 하며 손님들 육갑을 짚어주며 용돈을 벌곤 했다. 

어머니도 그 청년이 불쌍하여 자주 토정비결을 보곤 하셨는데 그 뽕뽕이 총각이 이런 질문을 한다. 

      "미용사! 얼굴에 상처 있어?"
      "어...어릴적 다친 입가에 작은 상처가 있는데.. 왜?"
      "휴...다행이다. 얼굴에 상처가 하나도 없으면 어른이 되어 크게 수술 할거야."

형제중에 가장 토실토실 건강하게 자란 어머니. 악한 영, 귀신도 시샘한다고 한다. 만약 어머니의 고운 얼굴에 티 하나 없다면 귀신들이 몇 십년 간 어머니 주위에서 시샘하다가 결국 일을 내고 만다는 것이다. 다행히 찬양연습 하러 교회에 가는 언니들 졸졸 따라 갔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니 천만 다행으로 입을 크게 다쳐 액뗌을 한 것이다. 

일흔이 막 넘으신 어머니. 여태까지 혈압이 좀 높으실 뿐 건강히 아직까지 일을 하시며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살고 계신다. 지금 제시카의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누나는 바람 쐬러 쇼핑몰에 갔다. 거실에서는 동생이 엄마를 찾는 막내 딸을 달래고 있다. 아직 입이 아프다고도 하고 목 마르다고도 한다. 뽕뽕이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그 분은 아마 그 업종에서 대단한 분이 되셨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영적인 눈이 뜨여 엄청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식사중 신음소리 조차 내지 않던 제시카가 뒤늦게 아빠에게 안겨 울음을 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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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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