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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은 이유
    짭짤한 문학/Essay 2019. 6. 25. 22:40

    창세기에는 아담이 하나님의 창조물인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장면이 나온다. 시인 김춘수 선생님의 에서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불렀을 때에 것이 꽃이 되었다고 한다.   시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아담이 주위에 그저 뛰어 다니는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줌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물에 의미가 주어진다. 사람이 만물 속에서 관찰하지 않고 이름을 지어 주지 않으면 시인 김춘수의 에서 말하듯 그저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안에 두신 이유는 어쩌면 몸짓에 지나지 않은 의미 없는 만물로 하여금 인간의 이성과 감성으로 이름을 얻고 의미를 부여 받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고도의 생각을 하고 언어생활을 하는 인간은 만물을 관찰하며 오랫동안 지식을 축적하며 문명을 건설해 왔다. 하나님이 만물에 심어 놓은 진리를 캐내며 발짝 발짝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불완전하고 위험하기 까지 하는 인간을 세상에 두신 까닭은 무엇일까?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오른다. 어린 아이가 자라나면서 언어를 배우고 철이 들어가듯 인류도 수천년간 온갖 전쟁을 치루고 복잡한 역사를 거치며 나은 세상을 가꾸기 위해 하루하루 나아간다. 성장해 가는 인간은 고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환희를 느낀다.

     

     

    인간의 그러한 변화무쌍함이 다양한 만물과 교류하며 이름을 짓고 의미를 부여함으로 세상은 아름다워 진다. 아무리 기가 막힌 세상이라도 인간과 같은 관찰자가 없다면 세상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창세기에 아담이 만물에 이름을 짓는 장면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는 의미 있는 일이다. 창조물이 진정한 창조물이 되는 순간인 것이다.  창조주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어쩌면 창조주의 아바타(?)라고 수도 있는 인간이 창조물의 특색을 끄집어 내어 이름을 지어줄 때에 창조주로서 흐뭇해 밖에 없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인간의 지적행위를 상징하고 우주만물을 대상으로 생각하고 관찰하고 발견해 가는 인간의 탐험을 뜻한다. 인간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존재의 의미를 확보한다. 오래 전에 지은 글쓴이의 시로 글을 마무리 한다.

     

     

    존재를 위한 존재

     

    그저 있는 것은 존재가 아니다

    설악산 꼭대기 흔들바위도 어느 등산객의 손에

    흔들려야 비로소 존재하는

     

    아무리 예쁜 꽃도 나비가 찾아와 주지 않고

    주는 없으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그저 살다가 가는 또한

    진정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걸 지켜보며 가슴 조이는 분의 애탐이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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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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