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지네 처녀와 지렁이


옛날에 아내와 여섯 자식을 둔 한 사람이 찢어지게 가난했어. 너무 오랫동안 아내와 자식들을 굶기자 더이상 못 보겠다는 거지. 어느날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삶에 의욕을 잃고 끝장을 내고 싶어 하는 거야. 혼자 산에 노끈을 가지고 올라가서 나무에 올라가 목을 매려던 순간 저기 아래에서 곱게 차려 입은 처녀가 떡시루를 머리에 이고 올라오네. 

그 나무 바로 아래에서 그 처녀는 시루를 내려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서 중얼거리더니 위를 쳐다 보지도 않고 내려 오라는 거야. "아저씨, 왜 죽을려고 하세요. 죽을 힘으로 사세요." 그 처녀는 그 사람에게 떡을 먹고 기운 내라고 하고는 돈도 두둑히 주었지. 그러면서 그 처녀가 한가지 당부를 하는 거야. "아저씨, 내려 가다가 상제를 만나거든 피하세요." 

그 말만 하곤 사라지네. 내려 가는데 어찌하나. 그 상제를 만났네. 근데 그 상제가 그러는 거야. "당신, 저 산 위에서 어떤 처녀를 만났지? 그 처녀는 사람이 아니라 천년묵은 지네야. 그 지네 말 들었다간 당신 죽어. 저 집이 그 지네가 사는데 못 믿겠으면 가서 확인해 봐. 앞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뒷담을 넘어 뒷문에 구멍을 뚫어서 봐. 그리고 '앗 지네다!'하고 소리 지르면 당신이 살고 그 지네는 죽지. 아무 말 하지 않으면 그 지네는 살고 당신이 죽어."

그 사람은 그냥 집으로 가서 허기진 가족들을 먹이고 그 돈으로 살만하게 됐지. 그런데 그 상제가 한 말이 자꾸 걸리거든. 정말 그 처녀가 지네인가 확인하러 그 산속에 집으로 갔어. 몰래 방문에 구멍을 뚫어 보니 왠걸 진짜 팔뚝만한 지네가 기어가네. 그 상제 말대로 소리를 지르자니 아무리 미물이지만 은혜를 베푼 지네가 죽겠고 가만히 있자니 내가 죽겠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은혜를 베푼 지네를 죽일 순 없지 하곤 어차피 죽었을 목숨 차라리 내가 죽자. 하곤 그냥 내려오네. 

한참을 걸어도 괜찮아. 그래서 다시 지네가 사는 집에 찾아 가서 문을 두드렸더니 곱게 입은 그 처녀가 나오네. 자초지종을 얘기 했더니 처녀가 말하길 원래 자기는 하늘에 선녀인데 죄를 짓고 세상에 내려와 기한 내에 100명의 목숨을 살리면 죄를 씻고 하늘로 살아서 돌아가고 살리지 못하면 영영 죽고 만다는 거야. 반면 그 상제도 하늘에 사자인데 죄를 짓고 이 땅에 내려와 기한 내에 100명의 목숨을 빼앗으면 살아서 하늘로 돌아가고 그렇지 못하면 이 땅에서 끝장이 난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지네를 보고 아무 말 하지 않아서 선녀도 살고 아저씨도 산거지. 잠시후 회오리가 불더니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홀연히 그 처녀가 하늘로 사라지네. 그리고 그 상제는 지렁이가 되어 흙 속으로 파 묻히고. 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하여 하늘을 바라 본 후 아내와 여섯 자식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 갔어.

* 상제: 부모가 죽어서 상복을 입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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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메주 도사" 서정오 글 / 이형진 그림 : 읽고 요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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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y Poet 짭짤한 시인

시 / 수필 / 시조 / 디카시 / 하이쿠 / 동시 / 소설 - 한 인간이 접하는 모든 일상을 다양한 장르의 글로 옮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