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11. 20:02ㆍ짭짤한 문학/수필 :: Essay
노동절, 그 특별한 노동
평상시 옷을 고치는 노동으로 밥 먹고 사는 나는 얼마 전 노동절 연휴에 우리 옷수선집 작업대 조명을 신식으로 바꾸고 스위치 하나로 조명과 아이론 전원을 통제하는 공사를 했다. 대학 전공으로 전기기술을 배운 덕에 기술자를 부르지 않고 내가 직접 시도해 본 것이다. 또한 몇 달 간 전기공사 일을 해 본 적이 있어서 그 경험을 믿고 어설프나마 연장을 챙겨 가게로 갔다.
올해 들어 우리 옷수선집 명의를 어머니에서 아들인 나로 변경했다. 그런 과정에서 소방서 직원이 우리 가게 전기배선을 점검 하다가 조명을 비롯한 몇 군데 지적을 해 준 것이다. 약 석 달 간의 시간을 주고 그 기간내에 고칠 것을 요구하였다. 그 만기일이 9월 중순인데 지난 9월 3일 노동절에 그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약 15년 간 사용해 온 침침하고 복잡한 조명을 싹둑 잘라 걷어 치워 버리고 아주 산뜻한 LED 조명, 20 암페어 전선 그리고 20암페어 스위치를 구입해 와서 혼자 뚝딱뚝딱 하루 종일 땀을 흘렸다. 그 사이 두 명의 손님이 왔다가 그냥 갔다. 오후 4시쯤 되어 배선이 다 되었다. 제어박스 스위치를 올리고 벽에 설치한 스위치를 켜자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스위치를 내리자 제어박스에서 딱 소리가 나며 꺼지는 것이다.
뭔가 배선에 이상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아도 계속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도 집에 오지 않는 형인 나에게 동생이 가게로 찾아 왔다. 동생은 유튜브를 검색해 보더니 스위치에 두 개의 하얀 전선을 바로 연결하고 접지선을 돼지꼬리로 만들어 스위치 자체에 연결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그대로 해 보니 과연 정상적으로 스위치가 작동하는 것이다.
밤이 늦어 내일 새벽에 일어나 가게 청소를 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 와 일찍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새벽 5시에 가게에 나가 진공청소기를 돌리는데 손님이 앉는 벤치 바로 위의 선반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놀람에 이어 바로 감사함이 찾아 왔다. 지난 17년 동안 선반이 가만히 있다가 손님이 없는 이 조용한 새벽시간 청소하는 시간에 무너져 내렸으니 그 타이밍이 얼마나 절묘한가.
만약 손님이 앉아 있거나 하는 상황에서 무너졌다면 손해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치우는 것이 그렇게 힘들거나 귀찮지가 않았다. 9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설치하신 오래 된 선반인데 조명을 새롭게 고치자 그 선반도 덩달아 나도 손 좀 봐 주세요. 하는 듯이 그 때에 맞추어 무너진 것이다.
올해 가게 명의를 나로 옮기고 조명도 새롭게 하고 선반도 무너지고 했으니 2018 올해는 뭔가 새롭게 거듭나는 해로 삼자. 옷수선일을 시작한지 12년이 막 지난 올해 아직 나는 이 일이 내 천직이라는 확신이 없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내 꿈의 직업을 생계를 위해 땀을 흘리면서 찾아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뱃속에 돈을 벌 수 있는 천재성이 다섯가지는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으니 마흔이 넘은 이 늦은 나이지만 어렴풋이 내 인생의 연장(tool)을 아직 찾고 있다.
노동절, 일주일이 지난 오늘, 힘들게 가게 조명을 바꾸고 글로 남기는 것은 살아오면서 내가 잘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내 마음이 내켜 우리 가게가 새로워 졌듯이 나 또한 뭔가 새로워 지고 싶은 갈망이 있음을 확인한다. 그래서 일까 오늘 오후 왠지 머리 숯이 적은 나, 가발을 쓰면 어떨까? 하고 가발가게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접고 말았다. 지금 있는 머리나 잘 유지하고 나름대로 잘 가꾸어 보자.
----
2018. 9. 9 [8:35 PM] 소나기
'짭짤한 문학 > 수필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날, 짭짤한 선물 (0) | 2018.09.26 |
---|---|
내일 당장 천국 가고 싶어요 (0) | 2018.09.26 |
그 흑인손님의 미소 (0) | 2018.05.29 |
오늘을 코딩하다 (0) | 2018.05.22 |
정신병을 살짝 뒤집어 보다 (0) | 2018.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