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수선(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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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시] 거미의 패시브 인컴
거미의 패시브 인컴 실과 바늘로 벌어 먹는 옷수선집 구석데기에 지 몸에서 뽑아낸 실로 집을 엮고 그 안에서 먹이를 기다리며 명상에 잠긴 팔자 한가한 놈이 있다 손님을 또한 기다리는 가게주인은 미싱에 실을 꿰고 드르륵 옷을 고치지만 이놈은 때때로 끊어진 집을 수선할 뿐 그 놈이나 주인이나 먹고 살기위해 실을 뽑고 실을 꿴다 가만히 그놈을 물끄러미 바라 본 주인은 그 놈이 자기보다 낫다는 생각 하나 하루종일 실로 옷을 고쳐야만 하는 주인의 패시브 인컴에 대한 꿈을 이 놈은 태생적으로 획득했으니 주인의 실은 돈 주고 구입하나 이 놈의 실은 평생 공짜 2023. 9. 10
2023.09.11 -
[e시조] 진상손님 - 살 떨리는 순간
진상손님 남의 돈 내 주머니 넣기가 힘들다고 드물게 찾아오는 진상손님 맞다보면 살이 다 떨리는 순간 억울함의 몸 현상 2023. 2. 24 사연: 그 백인 노인손님은 애초부터 수선된 바지를 찾아 가면서 집에 가서 입어 보고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다시 가져올 거라 얘기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그 바지를 들고 찾아와서는 왼쪽 오른쪽 기장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 대개 다리 길이가 다를 수 있어서 입어 보라고 했다. 그런데 땅에서 부터 길이가 양쪽 다 같다. 하지만 그는 앞에 구겨진 부위가 살짝 다르다며 생때를 쓰기 시작한다. 이미 그는 기장에 차이가 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아무리 사진을 찍어서 보여줘도 받아들이질 않는 모양이다. 나는 열이 나서 뭐가 문제냐고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응대했다. 그러..
2023.02.24 -
[e수필] 돈 40불 버는데 1년이 걸리다
돈 40불 버는데 1년이 걸리다 약 1년 전 어떤 백인 여자 손님이 찢어진 쿠션 커버를 우리 가게에 맡긴 적이 있다. 그 당시 꼭 찾아 갈 것처럼 중요하게 여겼기에 나는 디파짓 받을 생각도 없이 맡았다. 다 고치고 문자를 보냈는데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나중에 회복하면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손님은 거의 1년이 지나면서 총 다섯 번의 문자를 해도 찾으러 오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한 번 더 문자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우편료를 온라인으로 보내 줄 테니 소포로 보내 줄 수 있냐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집에 배달해 주겠다고 했더니 개스비를 주겠다며 액수를 알려 달라고 한다. 집주소를 보니 가게에서 거의 50분 거리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개스비 5불에 고친 비용 25불 해..
2022.07.01 -
[미국 옷수선 일기] :: 가족의 안전을 위한 환불 - 30불
가족의 안전을 위한 환불 - 30불 몇 년 간 조용했다. 미싱 돌리는 소리 외엔 그다지 시끄럽지 않았는데 오늘 주말 한 손님이 츄리닝 세 개를 테이블에 놓더니 저번에 해 간 건데 왼쪽 오른쪽이 1인치 차이 난다며 긴 쪽에 맞춰서 다시 해 달라고 한다. 짧은 쪽에 맞추는 건 가능해도 긴 쪽에 맞출 수는 없어서 혹시 몰라 한 번 입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안 입어 볼려구 용을 쓴다. 그래도 다행히 탈의실로 인도했다. 입은 채 바지 뒷 기장을 보니 거의 정확히 맞았다. 사진을 찍어 보여주니 이젠 앞이 다르다고 우긴다. 그래서 한 쪽 신발에 걸린 걸 자연스럽게 놓아 보았더니 마찬가지로 거의 같다. 손님 다리는 왼쪽 오른쪽이 서로 1인치 다르다고 말해주니 아니라고 하면서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크래딧 카드 영수..
2022.03.27 -
[미국 옷수선 일기] :: 갑자기 태클을 거는 손님?
갑자기 태클을 거는 손님? 오늘 중년의 백인 아줌마가 딸을 데리고 수선 된 정장을 찾으러 왔다. 그 아줌마의 딸이 잠시 입어 보는 와중에 그 아줌마가 가게에 죽 걸려 있는 드레스와 옷가지를 보며 언성을 높인다. “이런 일 힘들지 않아요?!” 첨엔 억양이 격앙되어 있어서 뭔가 따지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려워 보이는 일을 매일 하는 어머니와 내가 신기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려우니까 우리가 돈을 벌죠? 쉬운 일이면 누구나 해서 저희가 돈을 벌겠어요? 저는 차를 못 고칩니다. 어려워서. 그래서 정비사가 돈을 벌겠죠?” 그렇지 않아도 나중에 단골 자동차 정비사가 수선된 작업복을 찾아갔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말을 걸어 보았다. “손님, 매캐닉(Mechanic)이죠? 바디..
2022.02.26 -
[미국 옷수선 이야기] :: 우선순위와 인종차별?
우선순위와 인종차별? 오늘 오후 느즈막에 세 명의 손님이 거의 1분 간격으로 나란히 들어왔다. 첫번째 백인 할머니 손님은 무려 옷 여덟 개나 들고 와서 탈의실에서 한창 갈아 입고 있다. 두 번째 손님은 흑인 중년 여자인데 거대한 드레스 세 개를 들고 와서 할 수 없이 벤치에 앉게 했다. 바로 그 뒤를 따라 들어 온 젊은 백인 여자는 단순하게 생긴 짧은 드레스를 가지고 들어 왔다. 첫번째 할머니가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릴 거 같아서 엉겁결에 세 번째 들어온 젊은 백인 여자에게 뒤에 마련된 작은 방으로 안내를 했다. 두번째 들어온 흑인 여자가 아닌 세번째 백인 여자를 들여 보낸 것은 그 작은 방에 흑인 여자의 그 큰 드레스 세 개를 갈아 입고 잴 만한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 할머니 옷은 어머니가 ..
202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