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생명
2018. 10. 22. 05:05ㆍ짭짤한 문학/수필 ::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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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생명
인간의 삶은 그 잘난 성공을 향해 공부하며 일하며 무진장 애를 쓰며 대개 살아간다. 그 성공은 주로 자아실현과 자기만족에 치우쳐 있고 그 성공을 향한 수단과 방법은 때에 따라서 양심을 속이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목적한 바를 이루면 그 성공이 과연 이 하나뿐인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인간은 인생의 끝이 결국 죽음임을 안다. 그러나 그 죽음을 큰 병에 걸리지 않는 한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그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 지금 내가 흘리는 땀과 노력이 무의미해 지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성공이란 종이 트로피에 불과하다. 그러나 죽음이 곧 성공이 된 사례가 있다. 그것은 약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 33년을 거닐며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다가 신성모독죄로 나무에 달려 죽은 청년의 이야기이다.
나무에 달려 물과 피를 쏟으며 했던 그의 마지막 말중에 하나는 "다 이루었다."라는 말이다. 일반 사람들은 죽기 전에 자기의 꿈을 다 이루기 위해 매진한다. 즉 이 세상에서의 꿈이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 있었고 그 영원한 세상은 그의 죽음을 시작으로 온 세상에 퍼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그의 삶에 목적이었고 결국 그 두렵고 고통스런 십자가형을 감내한 것이다.
결국 언젠가 죽어 땅에 묻힐거라면 그 성공이란 것을 거머쥐기위해 애쓰는 것은 어쩌면 매달아 놓은 당근을 쫓아 죽어라 뛰는 경기용 말과 같을 것이다. 그럼 인생에 있어서 당근같은 성공보다 더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 청년의 죽음을 예로 들었듯이 우리의 죽음이 곧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지금 이순간 순간들이 곧 죽음과 친숙해 지고 그만큼 헛된 욕망에 사로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삶의 목표를 그 청년과 같이 죽음에 둔다면 우리의 삶은 더이상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닌 죽음 너머의 삶에 가까워 질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너무나 감각적이라 배고픔과 아픔과 기쁨과 즐거움이 내 감각으로 느껴져 "나"라는 개인이 뚜렷하게 인식되어 진다. 죽음은 그 감각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리라. 이 감각적인 세상에서는 영원히 전쟁과 기근과 지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않고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복을 얻는다. 그래도 이 세상이 헛점 투성이지만 인간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것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청년의 죽음도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에 있었고 성경은 언급하기를 수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한 몸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즉 이 세상과 저 세상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은 이 세상을 느끼는 데만 익숙해 있을 뿐이다. 이 목숨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베터리인 셈이다. 우리가 만약 죽어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베터리를 얻게 되면 그 생명은 지금 이 세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영원한 세상을 누리게 하는 영구적인 베터리가 될지 모른다.
우리의 생명은 귀한 것이다. 하지만 더 귀한 생명이 있다. 우리는 부모님으로 부터 이 생명을 얻어 이 세상을 산다. 이 생명은 이 세상에 맞는 생명일 뿐이다. 대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이 생명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생명을 얻는 길은 그 청년과 같이 죽음이 목적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자살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여기서 죽음이 목적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성공을 향해 달리는 삶이 아닌 그 청년의 삶과 죽음과 같이 자신과 타인을 위한 삶과 죽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의 성공은 죽음의 순간에서 판가름 난다. 즉 저 세상에 맞게 설계 된 새로운 생명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최종 목적, 성공이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고 못 벌고 좋은 직업을 얻고 못 얻고는 이 세상에서의 목숨에만 해당된 1차적 일들이다. 2차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이 세상과 저 세상이 하나가 되고 죽어도 살고 살아서도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성경의 기록은 과연 엄청난 비밀을 간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NaCl / 2015. 12. 26 [0:16] 겨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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