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3. 11:32ㆍ짭짤한 문학/수필 :: Essay
마음냄비
냄비에 물을 끓여 라면을 넣으면 따끈한 라면 한사발을 먹을 수가 있다. 냄비에 물을 붓고 된장 넣고 파와 버섯, 고추등을 넣어 끓이면 구수한 된장국을 먹을 수 있다. 내 마음이 냄비라면 이 마음에 무얼 넣어 끓일까. 오늘 나는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했는가. 어느날은 꿀꿀하고 어느날은 괴롭고 어느날은 상쾌하고 어느날은 즐겁다.
그것은 내 마음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에 따라 나의 기분과 말과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는 오감, 즉 눈, 코, 입, 귀, 촉을 통해 세상의 정보가 들어간다. 그리고 이 마음엔 예전에 경험했던 수 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있어서 언제고 다시 불러 올 수 있다. 과거의 정보와 현재 접하는 정보가 섞여 내 마음에 담기고 그 마음에 따라 나의 기분이 달라지고 말과 행동이 나온다.
마음엔 우울한 정보가 담겨 있는데 말과 행동을 즐겁게 내는 것은 고통이다. 누군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How are you?) 나는 아직까지 중학교에서 앵무새처럼 외운 "I am fine!" 을 외친다. 미국에서 산지 20년이 넘어도 그 인사에 대한 응답은 주입식 교육의 마포자루에 단단히 제어 되어있다. 언젠가 손님에게 "How are you?" 했더니 "I'm hanging in there." 하는 것이다. 힘든 상황인데 잘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참 좋은 대답이라 생각했다.
나는 싫으나 좋으나 주구장창 "I am fine! Thanks!" 하고 말았는데 그때마다 자질구레한 응어리가 차곡차곡 쌓인거 같다. 상대방의 인사에 솔직하게 답변하면 실례가 되는듯 우리는 마음에도 없는 "I am fine"을 기계적으로 대답한다. 말은 그래도 표정과 말소리의 억양과 느낌으로 "I am fine"이란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손님중에 억지로 "I am fine"을 하는 내 얼굴을 보며 "Are you ok?" 하며 묻는다. 손님도 가게주인이 기분 좋아야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에 가게주인의 심기를 묻는 것이다. 내 마음에 담아지는 무엇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을까. 그 우울한 정보를 제때에 배출시키고 내 마음의 냄비를 설거지해야 새롭고 상쾌한 정보를 담아 요리할 수 있는데 저저번주 내내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사로 잡혔다가 새롭게 한 주를 시작하며 마침내 마음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이 닳고 닳은 마음냄비, 이 찌그러진 냄비를 수없이 설거지하며 앞으로 남은 반평생은 이 냄비에 가급적 좋은것만을 추려서 넣어야 겠다. 같은 호수를 보더라도 강태공의 마음냄비에 담긴 것으로 보면 낚시도구를 챙기게 되고 수영선수의 마음냄비에 담긴 것으로 보면 물안경과 수영복을 챙긴다. 이 세상을 보는 눈은, 그래서 각 사람마다의 마음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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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3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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