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28. 20:03ㆍ짭짤한 문학/수필 :: Essay
안개와 같은 이 세상
이 세상이 헛되고 헛되다 라고하는 전도서의 글처럼 나는 꿈나라에서 깨어 헛된 꿈의 맛을 보고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꿈의 내용도 참 이상하다. 내 몸이 로봇이고 그 몸은 누군가가 조이스틱을 조작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악당과 막 싸우다가 강펀치를 맞고 쓰러졌는데 어떤 로봇의 큰 가방에 홀연히 연기가 되어 담겨지는 것이다.
이 세상이 가상세계일 확률이 거의 99퍼센트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앞으로 기술이 특이점에 도달하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 지면 우리는 가상의 체험을 현실과 거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하게 된다. 이처럼 이 세상도 어떤 참된 세상에 대한 가상세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영혼의 성장이라는 임무를 가지고 이 세상에 던져진 캐릭터 일 수도 있다.
지금은 추운 겨울이다. 12월도 아직 아닌데 너무 추워서 실내지만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다. 이 추위를 느끼는 오감은 고통의 인자를 잘 감지한다. 자연의 추위 뿐 아니라 교통사고로 인한 다양한 부상과 화상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몸의 손실 등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이 고통은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도 대단하다. 우리의 영 또한 갈급하고 무기력해 질 때가 있다.
이렇게 우리의 영 혼 육은 이 지구라는 세트장에서 고통을 느끼며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하던가 퇴보하던가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한 초월의식이 있다는 것은 움직이는 이 몸이 진정한 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방금 전 꾸었던 꿈처럼 그 로봇은 진정한 내가 아니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은 이 몸이 상대적으로 진짜 나이듯 이 몸도 사실 이 고통 너머에 참된 내가 있음을 어렴풋이 인식한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인류 종교의 메시지이며 죽음을 극복하고 삶을 초조하고 불안하지 않게 살아가는 초월의식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걸까? 오늘 아침에도 나는 어김없이 일 하러 나가고 어제와 거의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살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주어진 하루는 나에게 그저 버텨 내야할 시간과 공간인지 누리고 즐거워할 삶의 선물인지. 무엇 이던 간에 이 세계는 전도서의 말처럼 헛되고 헛된 안개와 같을 것이다.
이 안개가 사라지면 참된 세상이 뚜렷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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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28 [4:4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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