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1. 19:33ㆍ짭짤한 문학/수필 :: Essay
독서를 뽀개다
책은 언어의 묶음이다. 간혹 사진과 그림도 끼어 있다. 우리는 그 책이란 것을 읽어야만 한다고 많이 읽어야 한다고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 책을 많은 시간을 들여 읽어야만 하는 것인가?
독서라는 행위는 요즘같이 여러 매체가 발달된 시대에는 여러 지식습득 중 하나일 뿐이다. 예전 같으면 거의 모든 지식습득의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 졌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고 여러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는 이 시대에 책 만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책을 한 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한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글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가 가만히 앉아 책을 읽게 만들어 주지 않는 데다가 독서를 반강제로 권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압박이 있기에 조금이나마 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이 글의 첫 머리에 “책은 언어의 묶음”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책만 언어의 묶음일까? 친구끼리 만나서 나누는 대화와 연인과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블로그의 글을 읽는 것도 어떤 언어의 묶음을 접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주눅드는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독서라는 행위가 책에만 국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서라는 것을 다양한 정보를 얻는 다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삶의 여러 체험이 독서가 될 수가 있다. 매일 겪는 일상과 가끔 떠나는 여행과 교회나 절에서 듣는 설교와 법문도 일종의 독서가 될 수가 있다. 오히려 책은 한 번 읽고 시간이 지나면 거의 잊는다. 물론 다 읽고 난 후의 뿌듯함은 누구나 체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뿌듯함이 책에만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본 후 밀려오는 감동과 여운도 독서 효과이고 친구와의 대화도 독서효과이다. 더 나아가 혼자서 멍 때리며 생각에 잠기는 것도 독서이다.
이 모든 언어를 기반으로 한 모든 체험은 독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다른 것은 별로 하지 않고 그저 책만 읽어대는 사람보다는 여러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사람이 더 바람직한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닐까.
여태까지 독서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읽으라고 압박을 가하는 무게가 컸다. 이제 그 무게를 좀 덜어 냈으면 좋겠다. 책을 조금 읽더라도 대신 우리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미 독서를 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독서의 행위에 더해서 글을 쓰는 사람과 독서만을 하는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독서는 수동적인 것이고 글쓰기는 자기가 직접 창조의 자리에 서서 매체를 생산해 내는 능동적인 삶이다.
그러므로 독서를 많이 했느냐 따질 것이 아니라 글을 얼마나 기록하는 지로 그 사람의 독서량을 판가름 해야 할 것이다. 읽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 지나 쓰는 것은 이 존재가 온 몸을 흔들어 집중하여 이 가슴팍에 뚜렷이 새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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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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