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0. 10:09ㆍ이야기/미국 옷수선 이야기
손님에게 들킬뻔
한 일주일 전, 어떤 나이 지긋한 백인손님이 조끼, 셔츠, 양복자켓 등을 여러 개 가져왔다. 5년 전 맞춤으로 해 입은 옷인데 살이 빠져서 입지 못하다가 아까운 마음에 돈을 들여 고치기로 마음 먹고 우리 옷수선 가게를 찾은 것이다.
어머니는 조끼와 자켓을 주로 하고 나는 셔츠와 바지를 주로 하는데 요즘 어머니가 몸도 예전 같지 않으시고 일감도 많이 채워져 있어서 비교적 까다롭고 힘든 조끼 네 개를 다른 옷수선집에 보냈다. 갯수가 많아서 우선 다섯 개의 셔츠와 자켓을 먼저 하고 그 힘든 조끼 네 개는 나중에 끝내 주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먼저 해 주기로 했던 옷을 찾으러 그 손님이 왔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이 손님의 옷 일부를 다른 곳에 보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손님은 수선이 된 옷을 입어 보고 100불이 넘는 돈을 지불하며 나머지 조끼에 대해 입을 열려고 한다. 나는 그 나머지 옷이 우리 가게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는 고개를 옷 걸린 쪽을 바라본다.
그 상황을 지켜 보는 어머니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나에게 윙크를 한다. 그제서야 나는 그 나머지 옷들이 우리 가게에 없음을 깨닫고 그 손님이 그 조끼를 보자고 요구할까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나는 손님이 빨리 가게를 나가도록 몸을 움직여 옷걸이 쪽을 가리며 밖으로 유도했다.
다행이 그 손님은 자동차에 몸을 싣고 떠났다. 만약 그 손님이 자기 조끼를 보자고 하면 우리는 무어라 변명하기도 어렵고 잘못하면 손님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가게 이미지도 깎이게 될 뻔 했다.
아무리 콩알만한 사업이지만 나같이 기억력이 부족한 사람은 여러가지로 힘들다. 손님 이름같은 문자적인 건 그런대로 기억하지만 여러 잡다한 입체적인 일들은 정말 깜깜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오래 전 일도 훤하게 기억하시고 손님과 맡긴 옷에 대한 특징을 잘 연결 시키신다. 손님이 옷을 찾으러 올 때, 나는 컴퓨터에 의존해야만 옷을 내 주는데 어머니는 기억에 의존해서 척척 내 주실 때가 많다.
그럴 때 마다 엄마는 나에게 핀잔을 주지만 나는 이렇게 맞대응한다. “저는 두뇌를 고차원적인 일에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잡다한 일은 기억하지 않아요.” 그래도 일흔이 넘으신 엄마의 기억력이 부럽다.
아무튼 오늘 그 손님이 있지도 않은 조끼를 보자고 하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다. 만약 들켰을 때를 대비해 궁리해 낸 나의 궁색한 변명은 집에서 작업하려고 집에 가져 간 상태라고 둘러대는 것 뿐이었다.
이런 저런 난처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젊은 내가 모든 일을 해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옷수선 기술이 하루 아침에 습득이 되는 것이 아니니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기술을 익혀 나가야 겠다.
---
2019. 1. 18 (금)
한글/영어 이름 추천
'이야기 > 미국 옷수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옷수선 이야기 -- 실수를 하다 (0) | 2019.10.18 |
---|---|
미국 옷수선 이야기 - 껌 볼 머신의 추억 (0) | 2019.10.07 |
착각과 고지식 (0) | 2019.06.22 |
약혼녀 맘대로 (0) | 2019.03.08 |
구두쇠 손님의 절약은 과연 진정한 절약인가? (0) | 2019.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