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8. 12:04ㆍ이야기/미국 옷수선 이야기
실수를 하다
비교적 꼼꼼한 나는 웬만해선 실수를 하지 않는다. 실수는 같이 일 하시는 엄마의 단골메뉴이다. 그 날 따라 무슨 바람이 나서 나는 다른 방법으로 손님 바지 햄을 해 보았다. 긴 레깅스 여자 바지를 반바지로 만드는 것인데 그만 접는 선에 무심코 가위를 댄 것이다.
이미 싹둑 자르자 마자 나는 화들짝 놀라 점프를 했다. 후덕(작업대) 건너편 엄마도 덩달아 놀라신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어찌 할지 궁리를 한다. 우선 반바지이니 좀 더 짧아져도 어쨌든 반바지이다. 좀 더 야한 핫팬츠가 되지만서도. 어쨌든 최대한으로 기장을 확보하자. 그래서 두 번 접을 것을 한 번 접어 오바로끄로 처리했다.
실수를 한 바지라 그런지 연속으로 일이 잘 되지 않았다. 미싱으로 박는데 곧게 박아지지 않고 삐뚤게 박아졌다. 다른 바지들은 보기 좋게 됐는데 그 바지만 미운 오리새끼다. 며칠이 지나 그 할머니 손님이 옷을 찾으러 왔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주었다. 괜히 솔직히 얘기 했다가 긁어 부스럼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 그 손님이 바지 하나를 들고 들어온다. 흠칫, 따지러 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른 바지 하나를 맡기러 온 것이다. 표정도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의 실수를 알고도 모른 척 하는지도 모른다.
어제는 또 다른 손님이 커튼 여러 개 한 것을 몽땅 다 가져와서는 치수에 오차가 있다고 다시 해 달랜다. 못하겠으면 리펀드해 주고 다른데 가서 하겠다고 덤덤하게 협박을 한다. 그 긴 커튼 기장을 줄이는데 어느 정도 오차는 있을 수 있는 것인데 자기가 주문한 88 ¼ 인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안되는 것이다.
가격을 하도 따지길래 아주 저렴하게 했던 커튼인데 다시 하게 되어 머리에서 열이 올라왔다. 그 날 저녁 Y에 가서 열탕에 몸을 담갔다. 이상하게 싸게 맡긴 것은 일이 잘 되지 않는다.
실수라는 단어를 찾아 보았다. 失手(잃을 실 / 손 수). 손을 잃다? 손을 잘못 놀렸다는 말인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인공지능이 나 대신 가위질을 해 주면 좋겠다.
2019.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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