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10. 13:35ㆍ이야기/미국 옷수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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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경찰서로 달려 간 이유
며칠 전 이곳 경찰 한 명이 도망자를 쫓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망하였다는 기사가 떴다. 그 경찰은 겨우 서른 한 살 밖에 되지 않는 세 살 짜리 아이의 아빠였다. 얼굴사진을 보니 언뜻 낯이 익은 듯 했다. 이름도 그리 생소하지 않아 우리 옷수선 가게 손님 데이터 베이스를 조회하니 똑 같은 이름이 나왔다. 그런데 그 손님 옷이 아직 찾아가지 않은 채 옷걸이에 걸려 있고 액수도 101불이나 되었다.
옷 고치느라 수고는 하였으나 이미 운명을 달리한 손님이니 혹시나 가족이 찾으러 오면 절반만 받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동생이 그 죽은 경찰이 우리 손님이고 101불이나 되는 청구액의 옷을 찾아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그 옷을 경찰서에 가져가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경찰들은 대개 옷 수선비를 개인이 지불하지 않고 경찰서에 청구한다고 들은 바 있다. 그래서인지 동생은 그 옷과 영수증을 들고 경찰서로 가려 한다. 그래서 나와 어머니는 동생을 말리며 나중에 가족이 찾으러 오면 절반 정도 받을 생각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랬더니 동생이 펄쩍 뛰며 안 된다고 한다.
“죽은 사람 옷, 그냥 줘 야지 왜 돈을 받아?!” 그제야 동생이 경찰서에 가려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동생을 겪었지만 동생이 이 정도로 의리파 인줄은 처음 알았다. 동생이 미군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 가 있을 때에도 가족이 보내 준 음식을 동료들과 몽땅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동생은 그 죽은 경찰의 옷을 경찰서에 전달해 주고 감사의 말을 듣고 돌아 왔다. 힘들게 고친 옷, 비록 물질적 대가는 없었으나 몰랐던 동생의 내면을 알게 되었고 같은 시기에 뜻 밖의 돈 100불을 얻게 되어 이래저래 채워지게 되었다.
몇 주 전 옷을 맡겼던 그 경찰손님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걸 보니 사람 목숨이 참 덧없게 느껴지고 이 목숨을 유지하며 일하고 돈을 버는 일련의 과정에 손익으로만 따질 수 없는 어떤 유연함 즉, 동생의 의리로 손실을 달게 감당하는 것과 다른 경로로 다시 채워지는 섭리가 작용함을 느낀다.
그렇다. 삶은 정확하게 계산하여 손익을 따지는 주식시장이 아니라 다양한 마음의 소리와 춤이 어우러진 한바탕 마당놀이가 아닐까. 우리는 내일 또 다시 하루라는 마당에 뛰어 들어 크고 작은 일들을 겪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 밤 잠자리에 든다. 잠 못 드는 사람도 많은 요즘이지만…
2020.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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