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 20:25ㆍ짭짤한 문학/수필 :: Essay
멀쩡한 우체통을 뽑으라니
우리집 앞길은 우리 동네(Subdivision)에서 차들이 가장 빠르게 달리는 직선도로이면서 내리막길이다. 몇 년 전 두 번이나 우리 우체통이 내려오던 차에 의해 박살이 난 적이 있다. 그래서 다른 우체통을 새로 박았다.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별 탈 없이 그 우체통은 굳건히 서 있다.
그런데 약 2주 전, 동네 사무실에서 우리 우체통의 모양이 동네 표준과 다르다고 바꾸라는 이메일이 왔다. 우리는 누가 신고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옆집 흑인아저씨가 귀뜸을 해 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옆에 옆에 집에 사는 어느 은퇴한 백인남자가 우리 집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 뒤뜰에 덱(Deck)을 만든 적이 있는데 철거하라는 신고가 있었고 얼마 전엔 동생이 고기를 굽기 위해 뒤뜰에 돌로 만든 그릴을 설치해서 불을 피우는데 소방차가 달려 온 적이 있다. 그러나 소방대원들은 별거 아닌 듯 약간의 주의사항만 일러주고 돌아갔다.
최근엔 잔디를 깨끗하게 깎지 않았다고 신고가 들어와 다시 깎은 적도 있다. 이렇게 사사건건 신고를 하니 그 이웃 남자는 우리를 싫어하는게 분명했다. 동양인이 이웃에 사는게 싫은데 더군다나 집 주위를 자기처럼 깔끔하게 해 놓고 살지 않으니 더욱 미운 것이다.
오래 전엔 우리 집 대문에 날계란 여러 개를 던져서 청소하느라 욕봤다. 이런저런 지난 일들을 생각할 때 단지 우리집이 깔끔하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동양인이기 때문에 싫은 티를 내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우리가 우리집을 깔끔하게 관리하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이웃의 삐뚤어진 마음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우체통 신고는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네 규정을 읽어보니 우체통에 관련된 사항은 없었다.
그러나 이웃이 신고한 이상 생니를 뽑아 내 듯 멀쩡한 우체통 뽑아 내야할 판이다. 앞으로도 무슨 꼬투리를 잡아 신고할지 걱정이 된다. 같은 이웃끼리 대개 인사하며 별 탈 없이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는데 골치 아픈 이웃이 우리 집을 노려보고 있다.
우리는 아직 우체통을 뽑아내진 않고 어떻게 하면 이 우체통을 살려 둘 수 있을지 궁리 중이다. 다른 집 우체통과 같은 검은 색의 크게 다르지 않은 우체통을 뽑아낸다는 것은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다.
은퇴하고 할 일 없는 그 남자는 집을 깔끔하게 가꾸며 여생을 사는 반면 하루 종일 일하다 들어오는 우리로서는 집 관리 하는데 그 남자 만큼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무래도 음식이라도 해서 그 남자집에 찾아가 악수를 청해야 겠다. 어떤 음식이 좋을까? 아 그래. 엿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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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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