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1. 00:34ㆍ짭짤한 문학/웹소설 : "오류(Error)"
구슬치기, 개 뼉다구, 땅따먹기, 오징어포 등등의 놀이를 하며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내던 용진이 어느새 중학교에 올라가게 된다. 중학교 1학년 때엔 공부의 양만 조금 늘어났을 뿐 초등학생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뛰어 놀며 어린 티 그대로 지낸다. 하지만 북한군도 두려워 한다는 중2가 되자 용진의 정서가 눈에 띄게 불안정 해지고 감정의 기복도 심해진다.
그러다 가도 쾌활 할 때엔 반 친구들과 팔씨름을 하며 반 전체를 다 이겨 버리는 에너지도 솟는다. 외관상으론 힘 쌔 보이지 않는 용진이 신기했는지 반 친구들이 용진의 팔뚝을 잡아 주물럭 거려 본다. 하지만 근육의 양은 다른 친구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용진이 우울모드로 들어간 어느 날 그럴 때마다 용진은 자기의 그런 감정상태를 가족들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감과 함께 죄책감까지 떠 안게 된다. 간혹 텔레비젼에 아주 감동적인 TV문학관같은 드라마를 보게 되면 그런 우울감을 잊고 어느 정도 벗어나곤 한다.
중2 때부터 시작된 용진의 우울증은 정확히 말하면 조울증이다. 일정한 주기로 용진의 삶은 우울과 에너지 넘치는 시기를 번갈아 가며 반복한다. 그러한 반복은 용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할 아주 변덕스럽고 까다로운 짐덩어리로 여긴다.
그러한 상태로 중학교 과정을 다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시기에 엄마께서 작은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용진아, 너 실업계 고등학교로 올라가지 않을래?”
“……, 엄마 제 성적이면 인문계 충분히 들어가요.”
아마도 엄마는 형편이 어려워 선지 아들에게 그런 제안을 하신 모양이다. 하지만 용진은 그 당시 인문계를 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고정관념이 용진을 더 큰 나락으로 빠지게 할 줄이야.
학력고사의 마지막 세대를 사는 용진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하고 본격적인 공부벌레가 된다. 노력파인 용진은 무식하게 공부한다. 하지만 아주 뛰어난 성적은 거두지 못하고 그저 반에서 10등 안에 들 정도에 머문다. 매달 시험을 보며 등수가 비슷한 친구들 끼리는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
교실에 걸린 급훈은 대충 이런 문구다. “1초도 아껴 쓰자.” 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일 때마다 학생들의 샤프심도 째깍째깍 거린다. 수학 쪽지 시험을 치룬 어느 날, 수학을 가르치시는 담임 선생님께서 용진의 시험지를 보신다. 용진은 내심 칭찬을 기대한다. 30개의 문제 중에 3개만 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더 큰 기대를 하셨던지,
“용진아, 왜 3개나 틀렸니?”
용진은 아무 말도 못한다.
지금까지 칭찬을 받아 본 적이 거의 없는 용진은 아버지의 빈 자리에 점점 우울과 망상이 스며든다. 2학기가 되자 교실에 걸린 그 급훈이 아이들을 더 죄어 온다. 중간고사를 치루는데 시험지의 문제를 전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지리멸렬한 집중력의 용진. 결국 반 재적 64명 중 34등으로 떨어진다. 평소 말도 걸지 않던 비슷한 등수의 어떤 친구가 용진에게 말을 건다.
“무슨 일이니? 용진아?”
“……, 모르겠어. 바보가 된 거 같아.”
그 즈음 영어 수업 중에 이런 속담을 배운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공부만 하고 놀지 않는 아이는 바보가 된다.”)
그 속담을 듣곤 자신의 바보 같은 상태의 원인을 공부벌레가 된 데에서 찾는다. 하지만 용진은 원래의 등수를 회복하기 위해 잠시 쉬었다가 더 열심히 공부한다.
바보 같은 용진을 멀뚱히 쳐다보던 짝이 한마디 던진다.
“너 또.라.이지?”
하지만 용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치욕스러워 하기만 할 뿐, 짝에게 맞대응으로
“그럼 넌 머저리냐?”
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저렇게 용진은 힘겹게 1학년을 마치고 1989년을 향한 겨우살이에 들어간다. 엄마는 여전히 집에서 머리를 하시고 겨울이라 연탄 난로를 설치한다. 어디서 얻어 다 키우는 강아지는 성대에 이상이 있는지 평생 짖지도 못하고 그저 낑낑대기만 한다. 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 붙은 개밥을 연탄 난로에 녹여 다시 강아지에게 준다. 강아지는 자신의 운명으로 체념한 듯 그 맛 없는 개밥에 킁킁 냄새를 맡더니 어쩔 수 없이 먹는듯 하다.
용진도 그 개밥같이 맛 없는 사춘기를 꾸역꾸역 씹어 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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