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1. 00:37ㆍ짭짤한 문학/웹소설 : "오류(Error)"
푹푹 찌는 1989년 여름, 방학이라 해도 학생들은 피서는 커녕 오히려 보충수업에 들어간다. 공부, 그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양 학생들은 딱딱한 교실 의자에 앉아 건조한 지식뭉치를 꾸겨 넣고 있다. 더욱 예민해져 버린 용진의 마음은 쩍쩍 갈라지는 마른 땅이다. 촉촉한 가랑비는 오지 않고 살인적인 열기만 더하고 있다.
용진은 더욱 지쳐간다. 마음이 다 말라버려 감정마저 무뎌져 간다. 용진은 어느 때 부터인가 학교조차 가지 못하고 방구석에 쳐 박혀 나오지 않는다. 일주일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저 밥 먹을 때만 입을 벌린다. 그나마 다행이다. 밥이라도 먹으니. 아들의 상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생각했는지 경자는 교회 교육전도사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용진은 방구석에서 뭘 하는지 그나마 컴퓨터를 친구삼아 시간을 죽이고 있다. 없는 형편에 경자는 우울해 하는 아들을 위해 빚을 내어 그 비싼 286 컴퓨터를 구입한 것이다. 밤이 되면 용진은 일기장에 마음속에 흐트러져 있는 생각과 감정을 꺼내 놓는다. 우울한 날은 글씨체가 어둡고 즐거운 날은 글씨체가 밝다. 용진의 오르락 내리락 하는 그 용진의 마음이 일기장에 그대로 나타난다.
경자가 교회 전도사의 도움을 청하게 된 건 바로 그 일기장에 쓰여진 엄청난 내용의 글 때문이었다. 아들이 말을 하지 않아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눈치만 살피던 경자는 아들의 일기장을 본 순간 경악을 한 것이다.
어느 날 교육전도사가 용진의 집에 방문을 했다. 한 번도 대화해 본 적 없는 교육전도사와 비좁은 방에서 대면하는 용진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용진아, 너 야한 잡지 같은거 보니?”
“...... 예..”
전도사는 용진의 문제를 사춘기의 성으로 봤는지 그쪽으로 질문 하나를 꺼낸 것이다. 이것 저것 전도사는 대화를 시도하다가 별 생각 없이 이런 말을 던진다.
“동생은 성격이 활달하니?”
“저 보다는 나아요.”
“교회는 성격 활달한 사람이 필요하단다.”
그 말을 용진은 자기 자신이 어디에도 쓸모 없는 존재라는 뜻으로 받아 들인다. 전도사는 결국 용진의 방을 나와 경자에게 무거운 표정으로 말한다.
“용진이가 상담의 차원으로는 안 될 거 같습니다. 병원에 데려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집사님.”
“예, 전도사님. 그럼 어느 병원으로 가면 좋을까요?”
“춘천 도립병원으로 가세요. 언제 저와 같이 용진이 데리고 갑시다.”
용진은 자신이 정신병원에 가게 된다는 것에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낙인을 찍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도립병원 원장이 몇 장의 질문지를 용진에게 내민다. 두뇌가 멈춰버린 듯한 용진은 학교 시험같은 질문지에 겨우 겨우 답을 단다. 결과는 정상이다. 하지만 원장은 용진을 위해 약을 처방하고 경자에게 이런 말을 해 준다.
“어머니, 정신적인 질병은 신앙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용진이 믿음을 갖을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용진은 어느 날 갑자기 입이 돌아가고 몸이 비틀어진다. 그 걸 보고 놀란 경자는 아들을 이끌고 한의원을 찾아간다. 장님인 한의사는 용케도 용진의 몸에 침을 놓는다. 간호 조무사는 용진을 격려해 주고 싶었는지 옆에 있는 경자에게, “아드님이 키가 크네요!” 한마디 한다.
그러나 침을 맞아도 좀처럼 풀리지 않자 경자는 도립병원을 다시 찾아간다. 결국 해독제 주사를 맞고는 용진의 몸이 풀어진다. 아직 정신질환 약의 개발이 덜 된 그 당시 부작용이 많은 것이다.
이렇게 용진은 중2때 처음, 우울증이 생긴 이후 3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약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약 덕분인지 용진은 회복이 되었고 그 해를 무사히 넘기고 고3이 된다. 고2 담임 선생님은 용진의 그 취약함을 알고 용진의 고3 담임선생님에게 특별히 부탁을 한다.
용진의 3학년 교실 정면에 걸린 급훈은 다름 아닌 “먼저 인간이 되자.”였다. 학생들의 인성교육은 그렇게 액자에 급훈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부적과 같은 그 급훈은 일년 내내 학생들의 정신에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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