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4. 13:04ㆍ짭짤한 문학/수필 :: Essay
어린 조카는 결코 어리지 않다
열 살쯤 된 아이 같다. 불과 세 살이 지난지 얼마 안된 늦둥이 조카 대니는 컴퓨터 게임을 즐겨하는 철 없는 아빠 무릎에 앉아 피스타치오를 하나하나 까서 아빠 입에 쏙쏙 넣어 준다. 낼름낼름 제비 새끼처럼 받아 먹는 동생을 보니 누가 아빠고 누가 아들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생각지도 않게 나오게 된 셋째 늦둥이 막내 대니로 인해 대니의 할미, 즉 우리 엄마는 매일 웃지 않을 수 없어 더 오래 사실 거 같다. 엄마께서 하시는 말이, 한국식품점에서 사온 둥근 뻥튀기 두 개를 대니가 집어 들더니 지 가슴에 대곤, “브라!” 그랬다는 것이다. 엄마의 그 말씀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약간 뻥튀기가 볼록 튀어 나오긴 했어도 그걸 보며 “브라!”라고 외친 건 그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만 할 수 없고 이 세 살 밖에 안되는 남자아이의 머릿속에 여자를 밝히는 늑대의 본성이 꿈틀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로 보는 것도 많고 그래서 예전보다 빠를 수 있는데 얼마 전 내가 소파에 앉아 여자 아이돌 가수들의 댄스음악을 듣는데 내 앞을 지나가던 대니가 슬쩍 영상을 보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웃는데 삼촌도 여자 좋아하는구나? 그런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가렸다.
엄마 뱃속에서 한 달 일찍 나온 대니는 태어날 때부터 할미로 시작해 엄마 아빠 삼촌 두 누나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랐다. 핵가족 시대와는 다르게 경제적인 이유로 일곱 식구가 한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오히려 대니로서는 언어와 정서 그리고 소통면에서 유리한 환경을 가지게 된 거 같다.
멀리 한국에 나보다 한 살 아래 여자친구는 있지만 내일이면 지천명인 미혼의 나는 비록 자식은 없어도 조카를 보면서 자식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간접 체험을 한다. 내가 아무리 귀여워 해 줘도 대니는 나보다 컴퓨터 게임을 즐겨하는 아빠를 더 좋아한다. 게다가 자기 가족과 할미 삼촌을 구분한다. 뭔가 더 진한 가족애를 느끼나 보다.
아빠를 끔찍이도 생각하는 어린 대니의 아빠 사랑은 맨 처음 얘기 했듯이 피스타치오를 하나하나 까서 아빠의 입에 쏙 넣어 주는 효자 중에 효자다. 그럴 때마다 늦은 나이지만 나도 결혼하면 아들 하나 낳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무리한 욕심일까?
2022.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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