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1. 00:28ㆍ짭짤한 문학/웹소설 : "오류(Error)"
용진이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대호, 광수, 상길이와 학교에서 사총사로 지내면서 가끔 그들은 소아과 원장 아들인 광수네 집에 가서 놀곤 했다. 천주교인인 광수는 철학과 교수인 아빠와 병원 원장인 엄마 사이에서 나온 첫아들이다. 광수는 두 살 아래의 예쁜 여동생이 있었고 고양이도 함께 살고 있었다. 그의 집은 병원 윗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화투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부르마블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 때 갑자기 방문이 열린다.
“아휴~! 냄새. 너네들 발에서 발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광수의 엄마셨다. 광수의 엄마는 과일을 내미시며, “잘 놀다 가거라?” 하시며 바쁜 걸음으로 병원 아랫층으로 내려간다.
한창 놀던중 광수가 진실 게임을 하자고 한다.
“우리반 여자아이들 중에 누굴 좋아하는지 각자 말해보자!”
“그래, 그거 재밌겠는걸?” 상길이가 관심을 보이며 분위기를 띄운다.
“먼저 내가 고백할께. 나는 우리반 부반장 유정이를 좋아해.” 반장인 광수가 운을 뗀다.
“그럼 그렇지! 이미 예상한 바야.” 아이들이 싱겁다는듯 반응을 보인다. 그러자 상길이가 뒤를 잇는다. “나는…. 미영이를 좋아하는데?”
“키 큰 너에게 어울린다.” 광수의 반응이다. 그리고 용진의 가장 친한 친구 대호가 고백한다. “나는 준심을 좋아해.” 그 다음 마지막 용진이 말한다. “나도 준심을 좋아하는데?”
사실 용진은 현희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현희는 객관적으로 보기에 여러모로 그저 평균에 머무는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 대호가 우리반에서 가장 알아주는 여자아이의 이름을 꺼내고 다들 그럴듯한 여자아이들의 이름을 자랑스레 꺼내자 용진은 별 내세울건 없지만 자기의 이상형인 현희의 이름을 숨기고 마음에도 없는 대호의 여자, 준심의 이름을 말해 버린다. 광수와 상길이는 삼각관계라며 깔깔 웃는다. 대호는 별 말 없이 넘어간다. 용진은 왠지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진다.
어느날 교실에서 현희가 잠바를 허리춤에 둘러 매고 총총 걷는 모습을 보곤 용진도 따라서 허리춤에 자기의 잠바를 둘러 매고 걷는다. 그 모습을 발견한 담임선생님이 용진을 나무란다.
“용진아! 여편네같이 그게 뭐냐?”
그러자 용진은 당장 허리춤에 잠바를 풀러 버리고 자리로 돌아간다. 좋아하면 닮고 싶고 따라하기 까지 하나보다. 아이들은 다들 마음에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두고 있었지만 교제를 하거나 사귀는 일은 없다. 용진이 처럼 그저 따라하거나 아니면 장난을 걸거나 그러면 꼬집힘을 당하거나 할 뿐이었다.
겨울이 되고 시청근처 쓰레기장을 발견한 대호는 광수를 제외한 상길이와 용진이 그리고 용진의 동생 용준이에게 그 쓰레기장을 소개한다. 눈이 덮힌 쓰레기장은 보통 축구장 넓이만 하였고 그들은 눈으로 집을 만들고 불장난을 하며 해가 질때까지 놀다가 저녁때쯤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고, 너네 이게 뭐니?”
불내가 풀풀 피어나는 젖은 옷으로 돌아온 용진과 용준을 엄마 경자가 나무란다. 아빠 종옥이 미국으로 떠난지 이제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은 그 해 겨울이다. 용진과 용준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아직 어린 나이인가. 그 옛날 종옥과 종술이 친일파로 몰려 죽은 지아비 진수의 빈자리를 엄마 봉운이 다 감당하자 그 엄마를 위로했던 때와는 시대가 많이 변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누나 정윤은 책을 읽으며 항상 전교 1등이 보통이다. 그 옛날 젖배를 곯아 깡다구가 생겨 오히려 더 똑똑해 진것은 아닐까. 미국으로 떠난 아빠 종옥은 뉴욕에서 수퍼마켓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종옥은 아내가 보내주는 아이들 음성이 담긴 가정예배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위안을 한다.
정윤은 집근처 여자 중학교로 진학하고 용진은 6학년이 된다. 대호를 비롯한 친구들과 원만히 지내자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한다. 졸업즈음 학교에서 졸업여행으로 서울 63빌딩을 전세버스를 타고 떠난다. 버스에 탄 아이들은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왁자지껄하다. 하지만 용진은 왠지 모를 침울함에 휩싸여 창밖만 내다 본다. 그 모습을 본 담임선생님이 용진에게 말을 걸 정도다.
“용진아, 괜찮니?”
“예, 선생님.”
그저 놀기 좋아했던 어린애 용진이 졸업여행 버스에서 느꼈던 그 침울함은 앞으로 용진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미리 알리는 경고내지 신호탄이었을지 모른다. 다행이 서울 63빌딩을 다녀오고 용진은 언제 그랬냐는듯 활기를 찾는다. 중학교에 올라가던 1985년 반편성 고사에서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거둔 용진은 반 임원 후보에 오를 정도다. 수학부장 후보에 올랐지만 반아이들의 박수소리 크기로 결정하는 그 선거에서 떨어진다. 마음껏 놀던 초등학교 시절은 점점 추억으로 멀어져 가고 본격적인 입시지옥의 시스템으로 진입하는 용진은 다소 우울한 얼굴빛을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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