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12. 10:49ㆍ짭짤한 문학/수필 :: Essay
사슴, 애만 놓고 가지요
뒤뜰에 계시던 우리 엄마가 화들짝 놀라며 집으로 뛰어 들어 오신다. 바로 집 뒤뜰 나무 밑에 갓 태어난 아기 사슴이 혼자 엎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집 뒤뜰엔 사슴 같은 동물이 가끔 와서는 엄마가 가꾸시는 텃밭을 망가뜨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몸까지 풀고 간 것이다.
어미 사슴이 급했는지 새끼를 사람 사는 곳에 겁도 없이 놔 놓은 것이다. 동생이 잔디를 깎고 남은 풀을 나무 밑에 부어 놓았는데 그 풀 이불 위에 편안히 엎어져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아기 사슴 곁으로 다가가도 아기 사슴은 위협을 못 느끼는지 가만히 있다.
처음에 우린 새끼가 장애가 있어서 어미 사슴이 버리고 간 줄 알았다. 그래서 동물보호소(Animal Control)에 전화 했더니 하루 안에 어미가 새끼를 데리러 올 거라고 한다. 어쨌든 어미가 자식을 혼자 우리 집에 둘 정도로 사람을 믿는구나 했다.
다음 날 뒤뜰을 내려 다 보니 과연 새끼가 사라졌다. 물론 어미가 데리고 갔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동생이 출근을 하려고 차에 타고 어머니가 창으로 아들의 출근을 지켜 보는데 도로 건너편에서 우리 집 쪽으로 어느 어미 사슴이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보자 마자 어머니가 생각하시길 고마워서 인사하러 왔구나? 그렇게 한참을 쳐다 보더니 저 멀리 껑충껑충 사라진다. 사슴에게 믿음이라는 정신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 모르나 어떤 본능적 안심이라도 들었나 보다. 그리고 감사라는 것도 그 사슴에게는 우리집을 뚫어져라 쳐다 봄으로 고마운 집 이라는 찜이라도 해 두는 것일까?
바로 며칠 전엔 그 어미 사슴이 새끼 사슴을 데리고 뒤뜰에 나타났다. 새끼의 탯자리를 보러 왔는지 텃밭에 먹을 것을 얻으러 왔는지 아무튼 확실히 그 새끼 사슴은 어미의 품으로 돌아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태어나는 모든 것은 어미의 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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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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