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5. 11:16ㆍ짭짤한 문학/수필 ::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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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곳 내쉬빌에서 오마니와 함께 영화 "기생충(Parasite)"을 봤다. 으리으리한 그 박 사장의 저택 밑바닥에 미로같이 구불구불한 음침한 지하실이 마치 창자를 연상케 하고 무슨 이유인지 그 안에서 칩거하는 우중충하게 생긴 가정부의 남편이 기생충을 상징하는듯 하다.
어쩌면 박 대표 가족은 그저 지구라는 창자 안에 좀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고 사는 십이지장충 일 수 있고 반 지하 김씨 가족은 냄새나는 항문 근처에 요충일 수도 있다.
누구나 지구는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님을 안다. 누구든 주어진 수명을 살다 떠나야만 한다. 누구나 떠나야 한다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든 못 먹고 못 살든 잘 먹으면 그저 때깔 좋은 귀신이고 못 먹으면 때깔 험한 귀신일 뿐이다.
이 땅이 왜 생겼을까. 결국 떠나야 하는 이 땅이 존재하는 까닭은 어딘 가에 있을 또 다른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 준비 시키기 위함이 아닐까. 뜻이 이미 그 하늘, 그 미지의 세계에서 이루어 졌기에 이 땅에서도 이루어 져야 한다는 소명이 있다.
이미지 출처: google.com
그 미지의 세계는 각 개인이 각자의 삶의 내용에 따라 가는 것 같지만 이 영화를 보며 드는 생각은 이 땅에 모든 인류는 같은 운명 공동체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어차피 다 기생충이기 때문이다. 창자 안에서 아무리 고결한 인격체이든 폭력적인 술주정 뱅이 든 서로 얽히고 설켜 살아가는 기생충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다. 어떤 기준을 만들어 저 기막힌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는 사람과 못 들어가는 사람으로 나뉜다면 그 기준은 그저 좋은 사람이 많이 생기게 하기 위한 장치로써 만들어 졌을 뿐 실상 그 기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 으뜸의 가르침이 기업적 이윤추구의 상품이 될 때 저 천국은 값비싼 티켓을 구입 해야만 들어가는 놀이동산이 될 수 있다.
지구라는 숙주에 기생하며 사는 모든 인류와 그 외 모든 생명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질 때 반 지하 냄새나는 기택의 가족이나 가정부 문광이나 박 사장 가족 모두 처절한 인간적 인생살이를 끝내고 누구나 차별 없고 우열로 갈라지지 않는 신(神)이 곳곳에 임한 神이 통치하는 나라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 나라에 사는 모든 인간은 이제 더 이상 기생충 같은 인간이 아니라 나비와 같은 神人일 것이다.
2019.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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