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5. 23:36ㆍ이야기/미국 옷수선 이야기
옷수선 14년차 남자의 뿌듯한 하루
우리 옷수선가게에 어느 백인 엄마와 동양인 딸이 합창단 가운을 가지고 왔다. 그 엄마는 아마도 그 딸을 입양한 모양이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그 딸은 며칠 후 있을 합창 행사에서 입을 가운이 너무 작아서 우리 가게에 찾아온 것이다. 자로 재 보니 거의 2인치나 작았다. 옆 씸라인에서 늘일 수 없어 뒤 지퍼라인에서 천을 연결하여 늘리기로 했다.
다른 일이 밀려 하지 못하고 있다가 찾아갈 날짜가 다가와서 새벽같이 일어나 가게로 가서 작업을 했다. 거의 두 세 시간이 걸려 마무리가 됐다. 그런데 2인치가 아닌 1.5인치만 늘려졌다.
가게 문을 열고 그 손님에게 문자를 하여 딸에게 한 번 입혀 보게 하자고 했더니 학교에서 합창연습이 늦게 끝나 가게 영업시간 이후에나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가게로 나오면 된다고 하고 시간약속을 했다.
토요일인 그 날 가게는 2시에 닫는데 3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가게에 7분 정도 미리 와 보니 그 손님은 이미 와 있었다. 딸과 그 엄마가 탈의실로 들어가 가운을 입는데 긴장이 되었다. 너무 꽉 끼면 다시 해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잠시의 긴장이 흐르고 탈의실에서 좋은 사인이 들려왔다.
기뻐해 하는 음성이 새어 나온 것이다. 탈의실 커튼이 젖혀지고 직접 보니 정말 잘 맞는 것이다. 손님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양해를 구했다. 어머니께 보여 드리고 싶어서 였다. 옷수선 14년차인데 어머니가 주로 어려운 일을 감당하다 보니 아들인 나는 기술의 진보가 좀 더뎌졌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아마 야단을 엄청 맞으며 기술을 익혀 왔을텐데 사랑으로 감싸시는 어머니와 일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내 자신이 기술을 익히는 데 있어서 좀 더 전투적이지 못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가운수선을 나 혼자 성공시켜 어머니께 보여 드려 자랑하고 싶었다.
옷수선 14년차. 10년이면 전문가가 된다는데 14년 이란 세월동안 미싱을 밟다 보니 왠지 이 일에 자신감이 생기려 한다. 그 손님은 너무 좋은 나머지 20불 팁을 더 얹어 주고 인터넷에 좋은 리뷰도 달아 주겠다고 한다. 그 딸도 얼굴이 확 피어났다. 그 가운을 입을 수 없으면 합창 콘서트에 나갈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옷수선을 배운다는 내 여자친구. 함께 이 옷수선집을 운영하며 오손도손 살 날을 바라본다. 나랑 살기 위해 옷수선을 배우는 여자친구가 있으니 내가 더욱 어려운 기술을 익히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내일 그 여학생이 하는 콘서트에 시간이 되면 보러 가야겠다.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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