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27. 13:28ㆍ이야기/미국 옷수선 이야기
가족의 안전을 위한 환불 - 30불
몇 년 간 조용했다. 미싱 돌리는 소리 외엔 그다지 시끄럽지 않았는데 오늘 주말 한 손님이 츄리닝 세 개를 테이블에 놓더니 저번에 해 간 건데 왼쪽 오른쪽이 1인치 차이 난다며 긴 쪽에 맞춰서 다시 해 달라고 한다. 짧은 쪽에 맞추는 건 가능해도 긴 쪽에 맞출 수는 없어서 혹시 몰라 한 번 입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안 입어 볼려구 용을 쓴다. 그래도 다행히 탈의실로 인도했다. 입은 채 바지 뒷 기장을 보니 거의 정확히 맞았다. 사진을 찍어 보여주니 이젠 앞이 다르다고 우긴다. 그래서 한 쪽 신발에 걸린 걸 자연스럽게 놓아 보았더니 마찬가지로 거의 같다.
손님 다리는 왼쪽 오른쪽이 서로 1인치 다르다고 말해주니 아니라고 하면서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크래딧 카드 영수증까지 들고 온 걸 보니 아주 환불을 기대하고 온 모양이다. 기록을 조회하니 이미 찾아간 지 한 달이 넘었다.
끝까지 환불을 해 주지 않으니까 고발하겠다고 하면서 나간다. 그리고 한 시간 후 구글 리뷰에 최하점인 별 하나에 악평을 늘어 놓았다. 느낌표 6개 정도를 끝에 놓을 걸 보니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것에 아주 분통해 하는듯 했다.
가게문을 닫고 집에 와서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어도 괜히 원한이라도 사면 예전 LA폭동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사회 분위기가 올 경우 우리 가게도 당할 수 있고 하도 험한 세상이라 그 사람이 권총 들고 우리 가게로 올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늦은 저녁 오늘이 지나기 전 그 손님에게 문자를 하여 절반인 30불을 환불해 줄 테니 아무 때나 오라고 했다. 그리고 별 하나 리뷰는 지우지 말고 그냥 두어도 좋다고 했다. 별 다섯개만 가득한 가게보다 아주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리뷰가 좋다고 써서 보냈다.
그 사람의 리뷰 마지막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 가게 조심하라고 썼던데 오히려 내가 그 사람을 조심해야 할거 같아서 환불을 결정했다. 일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괜히 잘잘못 가리기 보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그깟 30불 보험비 냈다 셈 치자.
2022. 3. 26
'이야기 > 미국 옷수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옷수선 이야기] _ 그 손님의 씨니어 디스카운트 (0) | 2023.11.15 |
---|---|
[e수필] 돈 40불 버는데 1년이 걸리다 (0) | 2022.07.01 |
[미국 옷수선 일기] :: 갑자기 태클을 거는 손님? (0) | 2022.02.26 |
[미국 옷수선 이야기] :: 머리 좋으면 부자되기 쉬운가? (0) | 2021.12.30 |
[미국 옷수선 일기] :: 옷수선 14년차 남자의 뿌듯한 하루 (2) | 2021.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