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4. 03:39ㆍ이야기/미국 옷수선 이야기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 옷수선집에서는 일하는 주인이 왕인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런 주인의 심기가 어떠 한지 어떤 손님은 주인의 기분을 묻곤 한다. 그러나 이번 이야기에 나오는 손님은 좀 센 손님이다.
한 일주일 전 잠이 부족한 상태인 어느 날, 한 백인 할머니 손님이 BMW에서 딱 내리곤 트렁크에서 쿠션 하나를 들고 마스크를 쓰며 들어 온다. 나와 어머니도 주섬주섬 마스크를 쓴다.
그 손님은 좀 까다로운 일을 시킨다. 그 쿠션을 반으로 잘라서 지퍼 쪽을 살려 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쿠션 크기를 반으로 잘라 달라는 것이다. 그럼 속에 솜도 반으로 축소해야 한다.
그렇게 반가운 일이 아니고 잠도 부족해서 나는 아무래도 말투가 그리 정중하지 못했다. 그 손님은 남는 천과 솜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이 그저 크기를 반으로 하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우리는 남는 조각 천과 솜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며칠 후 그 손님이 찾으러 왔다. 제법 알맞게 크기가 조정된 쿠션을 보더니 좋아하는 눈치다. 그런데 갑자기 남는 천과 솜을 달라는 것이다. 어제 청소하면서 쓰레기통에 넣었고 꽉 차서 집에 가져간 상태였다. 그런데 마침 그 날 쓰레기차가 가져가 버린 것이다.
나는 돈을 일단 받아 놔야 했기에 나중에 집에 가서 찾아 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예전과 달리 가격을 깎지 않고 전액을 다 지불한다. 그러면서 남는 천과 솜 꼭 달라며 눈을 부라린다. 만약 돌려 받지 못하면 큰 일이라도 날 듯이 말이다. 그 날 내 말투가 좀 퉁명스러웠는지 그 손님이 일부러 트집을 잡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런 말투에 관성이 붙어선지 내 말투는 정중해 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한다는 말이 그 쿠션작업을 하는데 까다롭고 힘들었다고 열을 내며 말하자 갑자기 그 손님이 마스크를 벗으며 또 한 가지 불만을 말해 보시지? 그런다. 우리 가게는 손님이 마스크를 써야만 들어 올 수 있게 원칙을 정했는데 이 손님이 일부러 나를 골탕 먹이려는 것이다.
결국 그 손님은 이 번주 금요일에 다시 와서 남은 천과 솜을 찾으러 오겠다며 명심하라는 듯 눈에 불을 켠다. 그리곤 나간다. 분명히 그 손님은 나의 정중하지 않은 태도에 화가 나서 필요도 없는 조각천과 솜을 꼬투리 삼아 트집을 잡는게 틀림이 없었다.
그 이후로 몇 일이 흐르는 동안 있지도 않은 조각 천과 솜을 어떻게 하나 하다가 그 손님이 오기로 한 날의 바로 전 날 밤, 마음을 먹었다. 그 손님에게 가게 주인으로서 정중하게 대하지 못했던 내가 우선 잘못했다는 깨달음이 왔고 만약 그 없어진 조각천과 솜 때문에 환불을 요구한다면 그렇게 할 각오까지 했다.
금요일 아침인 오늘, 내일이 토요일 독립 기념일이라 오늘도 공휴일이지만 그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나 혼자 가게에 나갔다. 가게에 도착 하자 마자 그 손님이 바로 뒤 따라 들어온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굿모닝!”했다. 그 손님이 살짝 미소를 띠며 “굿모닝!”한다. 그 굿모닝으로 일단 절반은 먹고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저번에 정중하게 말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랬더니 활짝 웃으며 사과 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나는 그 조각천과 솜을 집에서 찾아 봤는데 이미 쓰레기차가 가져 갔다고 솔직하게 얘기 했다. 그러자 좀 실망한 눈치다. 그 쓸모 없어 보이는 것이 정말 필요는 했나 보다.
그러더니 하나 더 해 달라며 차에 가서 똑 같은 쿠션을 들고 들어 온다. 이번엔 남는 천과 솜을 꼭 돌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가게 주인도 잠이 부족하고 힘들면 친절한 말투가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가게는 주인과 손님이 갑과 을, 을과 갑의 관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서로 풀어 나간다.
아무튼 그 손님이 더 이상 트집을 잡지 않고 웃는 모습으로 돌아 가서 정말 다행이다. 생각보다 그 할머니 손님이 인상만 무섭지 그렇게 막 돼먹은 사람은 아니었다.
2020.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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