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8. 13:44ㆍ이야기/미국 옷수선 이야기
우선순위와 인종차별?
오늘 오후 느즈막에 세 명의 손님이 거의 1분 간격으로 나란히 들어왔다. 첫번째 백인 할머니 손님은 무려 옷 여덟 개나 들고 와서 탈의실에서 한창 갈아 입고 있다. 두 번째 손님은 흑인 중년 여자인데 거대한 드레스 세 개를 들고 와서 할 수 없이 벤치에 앉게 했다. 바로 그 뒤를 따라 들어 온 젊은 백인 여자는 단순하게 생긴 짧은 드레스를 가지고 들어 왔다.
첫번째 할머니가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릴 거 같아서 엉겁결에 세 번째 들어온 젊은 백인 여자에게 뒤에 마련된 작은 방으로 안내를 했다. 두번째 들어온 흑인 여자가 아닌 세번째 백인 여자를 들여 보낸 것은 그 작은 방에 흑인 여자의 그 큰 드레스 세 개를 갈아 입고 잴 만한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 할머니 옷은 어머니가 거의 절반은 끝내고 계시는 거 같고 그 젊은 백인 여자 옷은 간단히 끝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저 벤치에 앉아 있는 흑인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내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여자를 먼저 갈아 입게 하는가 그런 말이다. 그래서 이해가 되도록 설명을 해 주었다. “비록 좀 나중에 들어 왔지만 간단한 옷 하나라서 먼저 들여 보냈다.”
“그리고 당신 옷 세 개는 거울이 있고 재기 쉬운 정식 피팅룸에서만 갈아 입을 수 있다.” 그랬더니 자기가 먼저 왔기 때문에 저 여자를 먼저 들여 보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순서가 있기 때문에 비록 자기가 저 방에 못 들어가도 저 젊은 여자는 자기 보다 먼저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참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른 옷수선집에 전화를 하더니 그 거대한 드레스 세 개를 들고 나간다. 옷수선 20여년 동안 이런 일은 없었는데 한가지 교훈을 얻었다. 이런 경우에 먼저 들어온 손님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융통성의 문제도 있지만 감정적인 문제도 있는 것이다. 간만의 차이로 먼저 들어온 손님이지만 자기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그 강한 권리의식이 융통성에 앞선다.
아무튼 그 흑인 여자가 못된 사람이었다면 자칫 인종차별로 고발 할 수도 있었다. 언젠가 뉴욕 맥도날드에선가 커피를 마시다가 입천장을 디었다고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는 일화는 자칫 사소한 일로 거액의 돈을 잃을 수도 있는 경각심을 심어준다. 작은 옷수선집에서 째깐한 실과 바늘로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순간 훅 하고 날라가는 수가 있다.
2021. 9. 7 - 노동절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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